그 동안 꽤나 김영하의 소설을 좋아했었다.
딱히 무슨 무슨 소설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몰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구성력이 좋았고,
또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한 번쯤 뒤돌아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꽃]이 그랬고, [빛의 제국]이 그랬으며 [퀴즈 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김영하라는 이름 자체가 소설의 완성도를 보증해주는 보증수표였고
이 책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역시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작가의 이름으로만 고른 책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같은 능력을 같은 사람에게 보여 줄 수는 없다.
때로는 슬럼프가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자지가 원하는 바를 남들이 못 알아주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소통이 부재 되어 원치 않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개인적으로 꽤나 실망한 소설이라고 먼저 밝혀 두고 싶다.
우선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길래 이 책을 썼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거다.
아무도 원치 않는 생명을 부여 받고 태어난 제이의 지난한 성장과정을 그린 것도 아니고,
이른바 ‘일진’이라고 불리는 불량학생들 밀착 취재하여 그들의 모습을 그린 것도 아닌데
책의 1/3은 폭주족 얘기고 나머지 1/3은 ‘팸’이라고 불리는 가출 청소년들의 불완전하고 퇴폐적인 동거 얘기다.
거기에 중학생의 나이 때부터 소위 인생을 달관하고 철학에 도가 튼 인물로 설정된 제이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주위에 존재는 하고 있지만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기를 혹은 주목하게 되기를 거부하는 것들에 대한
진실을 얘기하고자 했는지는 모르겠다.
가출 청소년의 집단 동거와 폭주족들의 이면에 있는 스스로의 불안한 자존감과 사회적으로 받은 상처를 보여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것을 전달하기엔 완성도가 부족했다.
이야기 전개의 초점이 딱히 거기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17살의 소녀가 고속터미널 화장실에 낳았고,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터미널에서 조그만 장사를 하는 역할을 맡은 ‘돼지 엄마’가 받아 키우게 된 제이.
정확한 이유와 시점은 잘 모르겠지만 함구증, 그러니까 말을 하지 못하게 된 동규.
책의 전반부는 이 두 아이가 친구로써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보여준다.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그런데 여차저차해서 지방의 어느 보호원으로 보내진 제이는 그 곳을 탈출하여 서울로 올라 와서는 스스로 노숙자의 삶을 선택한다.
왜인지 이유는 없다. 그냥 노숙자가 된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가출 불량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의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된 후
그 곳을 떠나 다시 노숙자의 삶을 살며 여기저기 버려진 책을 주워 읽고는 인생에 대한 철학자가 된다.
불과 17살의 나이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살만한 집의 딸인 목란을 만나기도 한다.
이미 여기서 제이의 인물 설정 자체가 이상해졌다.
게다가 그런 이상한 철학적인 모습에 폭주족 애들은 제이를 찬양하며 따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해 광복절 전날 제이를 따라 대폭주를 진행한다.
왜 그 수많은 폭주족들이 제이를 찬양하는지 이유가 없다.
그냥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고 이 폭주 이야기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책의 1/3이나 차지하다 보니 읽다가 책을 그냥 덮으려고까지 생각했었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폭주족 이야기를 시간을 들여가며 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폭주를 하다 한강에 빠진 제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말도 이상하다.
본인을 상징화한 작가를 업으로 하는 인물이 예전에 알고 지내던 Y는 폭주족을 대상으로 교화하는 시민 단체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Y와 노숙자시절의 제이가 함께 했던 경험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되는데 이 것 또한 애매모호하며 알 수 없는 결말이다.
결국 이야기의 모든 것에는 합당하든 합당하지 않든 어떤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것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런 저런 부분이 끼워지고 맞춰진 느낌이 강했다.
다시 말하지만 대체 어디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지켜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혹여 작품에 내가 파악하지 못한 그 어떤 엄청난 문제의식과 철학적 고찰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독자들이 작가가 원하는 바를 추리하면서 문장 하나하나마다 해체해가며 그 소설을 분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처럼 좀 더 쉬웠으면 좋겠다.
너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한 완성도와 등장인물의 설정도 예전처럼 더 깔끔하고 명확했으면 좋겠다.
유명한 작가인 김영하에게 감히일개 독자가 바라는 바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고 말이다.
Leggie...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전작과 너무 비슷해 아쉬움이 남는 책 (0) | 2015.06.11 |
---|---|
청춘의 낙서들: 책은 제목을 보고 고르면 안 된다. (0) | 2014.12.20 |
폭스밸리- 어쩌면 우리는 동굴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0) | 2014.08.14 |
인생 2막, 여행하기 좋은 시절: 여행기는 마약이다. (0) | 2014.08.07 |
기록: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0) | 2014.08.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