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특징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치밀한 인물 설정, 모호함, 불필요함’이라는 세 가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 하다.
가장 먼저 이 소설은 인물 설정이 꽤나 치밀하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주인공 라이언이 사채 빚을 갚기 위해 바네사라는 여자를 납치,
자신만이 아는 어느 산기슭 동굴에 가둔 것에서 모든 이야기가 파생된다.
원래는 전혀 그녀를 죽일 의도 없이 그냥 돈만 받고 얼른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정작 납치 전날 있었던 폭행 때문에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혼자 동굴의 관 속에 갇혀있게 된 바네사의 생사에 대해 알 수 없게 되면서 늘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라이언.
라이언은 이처럼 소심한 성격으로 비춰진다.
반면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지만 남자가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 되어야 했고 자기가 그 남자를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하는 집착증을 가진 노라는
그 성격 때문에 연애 한 번 못하다가 자원 봉사를 하다 라이언을 알게 된다.
그리고 라이언이 모범수로 지정되어 출소되자 자기 집에서 살게 해주면서 자신만의 남자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라이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 즉 지나와 같은 직장인 건강 잡지사에서 일하는 알렉시아는 수퍼맘에 대한 열의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특히 경제 위기 속에서 잡지사의 대표가 된 이후에는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면서 매출을 올리기에 안간힘을 쏟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일 벌레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알렉시아의 남편 켄은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알렉시아를 외조 하는데,
네 명의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전쟁을 매일 치르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주변에서는 아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멋진 남편 혹은 훌륭한 남편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라이언의 의붓아버지와 전 여자친구, 바네사의 남편이자 시간이 흘러 어느덧 지나의 남자친구가 된 매튜, 노라의 친구 비비안 등의
인물들이 각각의 성격과 함께 역할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어 이야기 구조가 꽤나 탄탄하다.
반면에 이 소설은 스릴러인 듯 스릴러 아닌 혹은 추리 소설인 듯 추리 소설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를 띄고 있는데,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장르가 정확히 무엇이다’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늘 생각해온 바지만
이 소설은 조금 예외인 것이 모호한 장르 구분이 긴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모방 범죄 3건 중 두 건이 누구에 의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 그 어떤 설명이나 해석도 없이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게 뭐야?’라는 생각과 그냥 이야기만 길어진다고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방범죄의 원인과 주체가 밝혀지고 그것으로부터 3차 모방범죄까지 이어지는 방식을 택했다면
이야기 전개는 훨씬 드라마틱 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그러질 못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모방범죄가 연이어 벌어진다는 광고문구였기 때문에
모방범죄에 대한 불친절한 설명은 이 책을 상당히 아쉽게 만든다.
더불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 불필요한 부분이 꽤나 많다.
적게는 1/5 많게는 1/3 정도의 내용이 없어도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두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이유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 전개가 아닌
등장인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 묘사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는 그런 심리 묘사가 훌륭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길고 자세한 바람에 이야기가 지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고 좀 더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대체 누가, 왜 저질렀는지도 모르겠는 모방범죄 두 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아쉽다.
이 책의 제목은 [폭스 밸리]지만 더 정확히는 그 계곡에 있는 동굴이 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소설 속에는 라이언에 의해 납치된 바네사가 갇혀 죽음을 맞는 공간이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라이언도, 켄도 한 번 갇혀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공간에 갇혀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폭스 밸리의 동굴에 갇힌 것과 진배 없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네 삶은 어떠한가.
어쩌면 우리 역시 한 번 갇혀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폭스 밸리의 동굴에 갇힌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그렇지 않은지, 꽤나 궁금하다.
끝으로 이 책 덕분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작가 넬라노이하우스와 더불어 괜찮은 독일 소설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독자로써 좀 더 폭넓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즐겁기는 하다.
뭐 그 정도다.
이 책이 엄청나게 심장을 조여오는 짜릿한 심리 소설 혹은 스릴러 소설까지는 아니란 얘기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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