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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한여름의 방정식- 간만에 제대로 읽은 추리소설

by Robin-Kim 201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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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리 소설하면 으레 셜록 홈즈였다.

내 나이 또래 대부분이 셜록 홈즈를 통해 초리 소설에 입문했고 관심을 보였으며 열광하는 단계를 밟았듯이

나 역시도 아주 작은 단서들을 모아 탁월한 논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즈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추리소설 매니아가 될 수 없었다.

셜록 홈즈를 잇는, 그러니까 초등학생 시절의 스타였던 그를 대신할 이른바 명탐정이 중고등학교 시절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어쩌면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나라를 통치했었던 시대적인 상황이 추리 소설이 자라날 토양을 메마르게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추리소설 매니아가 아닌 입장에서 봤을 때추리소설은 그 특성상 살인사건이 99.9%인 듯하다.

절도나 사기 등은 아무래도 흡입력이나 몰입도가 살인 사건에 비해 약할 뿐 아니라 추리라는 것을 하기가 애매하니까.

그런 것들은 추리 소설보다는 심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의 소재로 더 적합해 보인다.

 

당시 신군부는 비정상적으로 획득한 권력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회적 안정을 기치로 내걸었고

그 것의 실천 방안으로 삼청교육대와 같은 사회의 잠재적인 불안요소를-신구부들의 입장에서 보면-제거하기 위한 국가 기관까지 신설했었으니

살인이라는 것이 핵심 소재인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잘 자라나기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튼 간에.

앞에서 긴 얘기를 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대부분 추리 소설의 발단은 지극히 단순하다. 살인 혹은 죽음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추리소설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은 결국 누가, , 어떻게 죽였는가 하는 3가지 요소를 얼마나 배배 꼬면서

하나 하나씩 단서를 풀어가느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가, , 어떻게.

알고 나면 지극히 단순한 이 세 가지를 얼마나 교묘하게 엮어놓느냐가 탄탄한 추리 소설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뜻이다.

그 세 가지 요소를 첨단 수사기법을 통해 과학 수사로 풀어내면 CSI가 되는 거고, 발로 뛰어 다니며 몸으로 해결하면 강철중이 되는 거고,

탁월한 논리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단서를 찾아가면 유가와가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핵심 인물인 물리학자 유가와.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한여름의 방정식]을 읽었다.

일전에 읽었던 [새벽 거리에서]는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했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억]은 추리 소설이 아니었으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용의자 X의 헌신], [매스커레이드 호텔] 이후 제대로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읽은 듯 하다.

 

사실 이 소설도 특별할 건 없다.

유가와가 하리가우라라는 한적한, 이제는 관광지로서의 기능마저 거의 상실한 바닷가 마을의 해저자원 개발과 관련하여

자문 역할로 초대되어 방문한 시점에서 그 마을에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유가와는 그 살인사건을 파헤친다.

예의 탁월한 분석력으로. 그리고 그가 그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사이 그 지역 경찰과 도쿄 경찰 등의 합동수사 본부는 지지부진하다.

어쩔 수 없다. 유가와라는 주인공이 돋보여야 하니까.

 

문제는 이 살인 사건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풀어나가는 것인데,

처음 책을 접했을 때 느꼈던 압도적인 두께 (실제로 이 책은 꽤나 두껍고 또 그만큼 무겁다)가 무색할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예의 그 탁월한 실력으로 탄탄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알고 보면 너무나 단순한 사실임에도 누가, 어떻게, 왜라는 세 가지 요소를 최대한 배배 꼬면서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흥미와 몰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2008년부터, 추리 소설의 세상도 아니고 상상의 세계도 아닌데

누가, , 어떻게 벌였는지 모를 사건 사고가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아니 사실 알려면 알 수도 있는데 찌라시들이 애써 감추고 권력자들이 애써 숨기려 하다 보니 모른 척하고

추리 소설의 세계인양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제는 그런 우리 현실이 아무리 감추고 숨기려 한다고 한들 요즘 같은 세상에 인터넷을 통해 그 진실은 버젓이 드러나고

그런 진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추리 소설에서 느끼는 것 이상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추리 소설이 아니더라도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한여름의 방정식]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앞서 얘기한 전작들에 비해 무언가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뭔가 한 방 빡하고 쳐주는 것이 없다고 해야 하나, 기가 막힌 반전이 없다고 해야 하나, 짜임새가 덜 탄탄하다고 해야 하나,

딱히 뭐라고 하기도 어렵고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언가 조금 아쉽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머스커레이드 호텔]의 광고문에도 [작가 25주년 기념작]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한여름의 방정식]에도 똑 같은 문구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출판사들의 무리수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인데 그만큼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의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참고로 책의 제목인 [한여름의 방정식]은 책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스포일러를 남겨두며 글을 마친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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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예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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