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in 모던타임스: CSI를 가능하게 한 과학수사 태동기

 

 

 

때로는 뉴스를 보기가 두려울 때도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장식하는 기사들 중 상당수가 [실종], [살인], [납치] 등과 같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 범죄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폭력]이나 [사기] 등과 같은 중증 범죄들도 날로 흉악해지고 잔인해지고 있으니까.

이미 뉴스 기사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그 범죄의 심각성을 알 수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버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너무나 자주 그것도 많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기사들에 무감각해 진 것이 또 다른 이유는 아닐까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피해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깐 해 본다.

하기야 국민 전체를 상대로 사기를 쳐서 코스프레 하는 할머니가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위에 잠깐 언급했지만 범죄 수법은 날로 잔인해지기도 하지만 교묘해지기도 한다.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들을 통한 모방범죄부터 검색만 하면 관련 자료들이 무수히 쏟아지는 인터넷 정보들까지 더하면

과장되게 얘기하면 완전범죄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에 대응하는 수사 기법 역시 날로 정교해지고 과학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에 맞춰 범죄 기법도 더 발전하고 있으니 아이러니 하다고 할 수 있을 듯도 하다.

 

뭐 어쨌든.

다른 포스팅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우리 나라에 이른바 '과학 수사'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것은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덕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 하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그러니까 지금처럼 과학적으로 범죄를 밝히기 어려웠던 시절 수사관이나 재판관들은

어떤 이유들을 근거로 유죄 여부를 판단했는지, 판관 포청천은 무엇을 근거로 사건을 해결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지긴 한다.

 

이처럼 CSI가 가능하도록, 그러니까 과학 수사가 가능하도록 1920년대에 이미 그 기틀을 잡은

노리스, 게틀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CSI in 모던타임스]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두 사람은 뉴욕 검시청에서 검시관으로 일하는 화학자라고 볼 수 있고,

이 책은 두 사람이 해결한 수 많은 사건 중 다양한 화학물질을 이용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클로포롬, 메틸 알코올, 일산화탄소, 수은과 같은 물질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해서 살인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연구와 실험을 통해 그런 사실들을 두 사람이 밝혀 냈는지에 대해 실제 벌어졌던 사건과 일화들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특히 금주법 시행 이후 대유행 했던 '밀주'들이 공업용 알코올 혹은 우드 알코올과 같은 저가 알코올을 사용해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했고

(실제로 수 많은 사람들이 저가 알코올을 마시고 죽었다) 대공황 이후 주머니가 얇아진 사람들이

더 많이 저 품질의 알코올을 찾으면서 더 많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금주법이 오히려 사람들을 죽이는 법이라며

금주법을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쪽의 1등 공신이 바로 노리스와 게틀러 두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화학물질과 관련된 것을 다루는 책이다 보니 화학 공식이나 분자 구조 및 결합에 대한 어려운 내용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어떻게 과학 수사가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특히 소설가 제임스 M. 케인이 그 유명한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집필하는데 영감을 준 사건을 보면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한 번 해보게 된다.

 

범죄 수사 기법 중 요즘 각광받고 있는 것이 프로파일링 기법인데 과연 이것이 과학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는 아직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과학보다는 통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인데 하지만 프로파일링이란 것이 범죄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추리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수사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반면에 사인을 밝혀야 하는 입장에서는 추론 혹은 추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섣부른 추론으로 무고한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과학적 요소는 반드시 필요하며 그런 과학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수사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노리스와 게틀러다.

 

그래서 어쩌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두 사람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꼭 경찰이나 재판관이 아닐지라도.

 

참고로 이 책은 두껍기도 하고 화학 얘기도 포함되어 있다 보니 무리해서 빨리 읽으려고 하지 말고 쉬엄쉬엄 읽기를 추천한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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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