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꽤 근사하게 읽은 소설 중에 지금은 절판된 [무당]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실제 무당을 업으로 삼고 계신 분이 쓰신 걸로 기억이 되는데 그 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쓰셨는지
아니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옆에서 도움을 준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가 겉으로 알고 있는 무당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속살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무당이란 기본적으로 귀신 혹은 영혼과 접신하여 그들의 얘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직업인데
점 보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어떻게 귀신들이 특정인의 앞날을 내다 보거나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귀신이니까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수한 능력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은 듯 합니다.
헐리우드에서도 [Ghost (사랑과 영혼)], [콘스탄틴]처럼 우리의 무당 역할을 하는 심령술사 혹은 퇴마사를 등장시키는 영화가 있고
충무로에도 [박수건달], [점쟁이들], [청담보살]처럼 무당을 직접적으로 등장시키거나 얼마 전 포스팅했던 [시실리 2km] 처럼
사람이 귀신과 감정을 교류하는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요.
다만 충무로가 헐리우드에 비해 아쉬운 점은 모두 코메디 장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래 전 [퇴마록]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긴 했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이 웃음을 담보로 하고 있어서 이야기의 다양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멋진 악몽]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 역시 기본적으로는 코메디를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단순히 코메디로만 볼 수 없는 인간애를 비롯한 그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느 날 후우코라는 여자가 자신의 남편과 바람 피던 여동생인 스즈코와 싸우던 중 추락사로 죽게 됩니다.
하지만 스즈코는 언니인 후우코 행세를 하면서 내연남 (후우코의 남편)과 짜고 스즈코의 남편을 범인으로 몰고 가면서
스즈코의 남편은 죽지도 않은 아내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되는 게 언니 후우코와 동생 스즈코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쌍둥이라는 설정인 듯 보이는 것이
타케우치 요코라는 배우가 1인 2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생이 언니의 남편과 바람을 피웠고 죽은 것은 언니입니다.
그리고 동생은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언니의 삶을 사는 척하며 자신의 진짜 남편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담당 변호사는 변호사를 시작한 이래 전패를 기록하고 있는 호쇼 에미 (후츠가 에리)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호쇼의 아버지 (초난강)는 젊은 시절 명성을 날렸던 유명한 변호사로 호쇼가 10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법조계에서는 그의 이름과 화려한 변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당 사건 판사는 물론 상대편 검사인 오사노 테츠까지도 말이죠.
어쨌든 보스로부터 변호사로써의 마지막 기회를 받은 호쇼는 이 사건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용의자 (후우코의 남편)를 만나 당시 정황을 듣던 중 그로부터 이상한 알리바이를 듣게 됩니다.
운영하던 빵 공장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아무도 모르게 자살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가 죽은 시간 어느 시골의 여관으로 갔는데
마침 전국시대 무사의 유령이 자기를 덮치고 (?) 있는 가위에 눌리면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자살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호쇼는 이야기의 진실을 확인하고자 직접 여관으로 찾아가 주인 아주머니의 얘기도 듣고 방도 살펴 보던 중
실제 무사 유령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람이 유령 혹은 귀신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얘기를 하거나 감정의 교류를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는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헤묵은 논쟁거리입니다.
더 정확히는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 여부와 함께 사후 세계의 존재여부가 더 원초적인 논쟁거리죠.
이 영화에서도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보여지는 것이 로쿠베라는 이 유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을 한정 지어 놓습니다.
주인공인 호쇼 외에 식당에서 잠깐 마주친 남자, 거리에서 잠깐 마주친 여자 만이 로쿠베를 볼 수 있는 인물로 나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사후 세계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따라서 귀신이나 유령 따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 사건의 검사인 오사노 테츠인데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최근에 일이 잘 안 풀리고,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시나몬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호쇼는 용의자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서는 유령인 로쿠베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
일본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유령을 증언대에 세우기 위한 도전을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그리고 검사 오사노 테츠는 세계에서 가장 해괴망측한 재판이 될 것이며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호쇼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솔직히 제가 오사노 테츠라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유령이 증인이 되고 그런 유령의 증언을 토대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으며
설사 생각했다 한들 그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길가는 사람 100명을 붙잡고 물어 보면 100명이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의 상식에 도전하는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단순히 유령을 증인으로 세운 재판이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닙니다.
세계 최초로 증인이 된 유령 로쿠베는 전란시절 적과 내통한 죄로 참수형을 당했다고 여러 역사책에 기록됩니다.
그리고 검사인 오사노는 로쿠베의 이런 인간성을 들어 그의 증언이 과연 믿을만한가라는 질문을 판사에게 합니다.
하지만 사실 로쿠베는 적과 내통한 적이 없음에도 모함에 의해 참수당했고 호쇼와 만나는 순간부터 그와 관련된 억울함을 계속 토로했으며
유령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증인으로 서 주는 대가로 호쇼에게 요구한 것은 진실을 바로 잡고 위령비를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현재의 역사가 진실을 왜곡하여 한 사람의 일생을 뒤바꿔 기록한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역사는 상식이라고 불립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셨고 이순신 장군이 적은 숫자의 군사를 가지고도 일본군을 대파한 것은 상식으로 통하는 역사입니다.
수 많은 역사서와 학자들이 밝혀내고 정리하고 교육이 되면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입니다.
로쿠베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많은 역사서들이 그를 적과 내통한 배신자로 기록했고 그렇게 교육되었기 때문에 '로쿠베=배신자'라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역사는 누가 어떤 관점으로 정리하고 기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순히 굉장히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지난 겨울 대한민국을 들끓게 했던 역사 교과서는 그래서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친쪽발 민족반역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세력이 현재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교과서를 '우편향'이라고 포장하지요.
아닙니다. 문제가 되었던 역사 교과서는 우편향도 보수 성격도 아닌 그냥 친쪽발 민족 반역세력들이 만든 책입니다.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어쨌든 이런저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호쇼는 변호에 승리합니다. 변호사를 업으로 삼은 이후에 처음으로 거둔 성공이죠.
그리고는 혼자 어두운 법정을 서성이다 로쿠베가 데려온 아버지의 영혼 (유령)과 조우합니다.
그런데 재판까지는 오만가지 유령을 다 볼 수 있었던 호조가 이 때부터는 그 어떤 유령도 볼 수 없게 되었고 때문에
10살 때 헤어진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아버지는 그녀의 질문의 하모니카로 대답을 하면서 감정을 교류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류의 영화들이 재미있고 코믹하게 영화를 이끌어 가다 마지막에 눈물 한 방울 빡! 끝! 하는 식으로 영화가 구성이 되는데
이 영화도 그런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더 독특한 것은 2시간 20여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웃음을 선물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그러니까 요즘 말로 느닷없이 빵 터진 부분은, 호쇼의 보스 변호사로 출연한 잘 생긴 아베 히로시가
법정에서 시간을 끈다며 느닷없이 탭 댄스를 추는 부분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시간을 끌기 위해 탭 댄스를 추는 상황도 뜬금없지만 진지한 표정 이후에 갑자기 벌어진 상황은 예기치 못한 웃음을 선물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외에도 여 주인공 호쇼와 로쿠베, 검사 역을 맡은 오사노와 저승사자로 나온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웃음은 꽤나 재미 있었습니다.
보통 등장인물이 많으면 굉장히 산만해 지는데 (저는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익히 알려진 유명한 배우들이어서인지
엄청난 연기 내공을 뿜어내며 잘 조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승사자가 갑자기 나타나 로쿠베의 증언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를 데려가려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호쇼는 이번 재판에서 그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지만
저승 세계는 인간의 필요에 신경 쓸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무작정 로쿠베를 끌고 가려고 하죠.
사실 그 세계는 그 세계 나름대로의 규칙과 규율이 있을 테니까요. 그 때 검사인 오사노가 나서서 저승사자의 협상을 통해
로쿠베를 좀 더 현실 세계에 머물도록 하자 호쇼는 고마움과 함께 의아함을 표현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오사노는 유령의 증언이라는 희대의 재판이 무의미 하다고 계속 판사에게 주장했고
지속적으로 사후 세계란 없다고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오사노가 호쇼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적이 아니야. 진실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선 오히려 한 편이지. 진짜 적은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이지. "
이 대사를 보는 순간 머리가 띵하기도 했고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진실이 감추어진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친쪽발 민족 반역 세력들만이 억지로 우기고 있으며 진실을 자꾸 가두려고 하는 것은 다 아실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코메디도 좋고 재미도 좋고 감동도 좋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우리의 현재를 관통하고 있는 영화가 아닌가라고요.
이 영화의 결말도 결국은 진실이 밝혀지면서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납니다.
밝혀져야 하는 진실은 밝혀져야 행복하게 끝난다는 것이겠지요.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지난 2011년 10월 29일 개봉 이후 4주 동안 3,600만 달러(한화 약 400억)의 수익을 내며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삼총사], [머니볼], [신들의 전쟁] 등
막강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연이어 누르고 흥행 1위를 지켜내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킨데다
제35회 일본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우수작품상, 우수감독상, 우수여우주연상, 우수각본상, 우수음악상, 우수촬영상, 우수조명상, 우수미술상, 우수녹음상,
우수편집상까지 총 10개 부분을 수상하며 흥행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만큼 국민들과 함께 문화계에서도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일본에서의 흥행과 진실이 감추어진 우리 현실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느냐고요?
우리 사회에서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집단이 어떤 성격의 집단인지를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에서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세력과 국적만 다를 뿐이니까요.
영화 가지고 너무 심각한 것 아니냐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압니다.
중요한 건 제가 의도적으로 심각하게 분석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이지요.
[멋진 악몽]은 그런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로서도 재미있고, 감동도 있으며 일본 영화임에도 우리의 현실을 한 번 더 되짚어 볼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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