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떠나는 이유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누구나 몇 천 가지라도 댈 수 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에 따라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정답은 모른다.
우리 역시 우리가 택한 삶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사실 누가 알겠는가?
아니, 누가 삶에 정답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스스로가 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수 밖에.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라는 책의 저자이자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 중인 ‘덩헌’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에 대한 수 많은 글 중에 이 말만큼 나의 가슴을 울리는 글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될 만큼 좋아하는 문구다.
여행이란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느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신적 세계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 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휴식이며 누군가에게 여행은 모험이고 누군가에게 여행은 낭만이며 누군가에 여행은 자아성찰이다.
여행의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도 없으며 그렇기에 그 어떤 여행의 목적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래.서.
1952년이라는 20세기 중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던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그의 사촌 형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4개월간의 남미여행을 떠난다.
‘포데로사’라는 오래되고 낡은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떠나지 않고 평온한 삶을 살다
커피 집에서 차 한 잔 시켜놓고 꾸벅꾸벅 조는 노년을 맞이하기 보다는 더 넒은 세상을 보기 위해.
의대생과 생화학도라는, 당시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인 아르헨티나의 중산층이라는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영화적인 가치로 본다면 별 한 개도 아까울 만큼 어설프기 짝이 없고 재미도 없을뿐더러 엉성하기 그지없는 이 영화는
다른 각도로 보아야 그나마 2시간이라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 에르네스토가 쿠바 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체 게베라’인 것.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칠레와 페루 그리고 당시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나환자 촌인 산 빠블로에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하며
에르네스토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온 몸으로 겪게 된다.
과거 유럽의 식민지 쟁탈 시대 최대의 피해자인 남미는 곳곳이 스페인에 의해 폐허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거대 자본을 가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멀쩡하게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먹을 것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비루하게 살아가야 하는 토착민들을 보면서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이 때의 경험이 에르네스토, 그러니까 체 게바라로 하여금 나중에 대중을 위한 혁명의 지도자가 된 밑거름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행 후 집으로 돌아와 의대를 졸업하고 또 다시 친구와 함께 남미 일주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중간 중간에 ‘혁명’이란 단어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으로 미래의 체 게바라의 탄생을 암시하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스페인은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는 지금도 ‘Common Wealth’라고 하여 과거 영국의 식민지들끼리 모여 올림픽을 하는 등
피지배 국가들의 원성이 높지 않지만 스페인의 경우 남미의 역사화 문화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시켰으며
돈과 힘으로 그 곳에 살던 사람을 몰아 내었으니 사죄를 하더라도 백 번은 더해야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의 만행에 묻혀 두루뭉수리하게 아직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일본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나쁜 국가 혹은 나쁜 민족임에는 틀림 없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면.
이 영화는 남미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마추픽추와 두 어 곳을 빼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끝이 없는 시골길과 자갈 사막,
남미 곳곳의 시골 마을들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 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여행 중반쯤에는 오토바이마저 망가져 걸어서 남미를 일주하는데 그 과정도 어설프고
여행 중 받은 여자친구의 편지에 에르네스토가 왜 실의에 빠졌는지 나오지도 않으며
누구나가 선뜻 이 가난한 두 여행자를 도와준다는 설정도 어색하기 그지 없다.
다만 이 것 하나만은 기억해 두자.
앞서 얘기했듯이 여행이란 어떤 관점에서 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에르네스토는 그런 여행을 통해 미래의 체 게바라로 탄생할 정신적 밑거름을 쌓는다.
그리고 그것이 여행의 진짜 묘미이며 여행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체 게바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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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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