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엿본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나 누구나 알고 있는 대중적인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과 살아가는 모습을 몰래 훔쳐본다는 것은
재미를 넘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 더 끌리는지 모른다.
다만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모습,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는 인간들의 삶을 제외한다면.
다른 아나운서들보다 딱히 예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언제부턴가 제대로 된 한국어 구사 솜씨와 반듯한 이미지가 아닌 예쁜 외모와 튀는 행동으로 주목 받는 것이 일반화된
아나운서라는 직종에서 그녀는 그렇게 튀어 보이지 않았다.
덧니와 함께 시인과 결혼했다는 사실만 기억 될 뿐 여기저기 얼굴 내밀며 연예인인 줄 착각하는
아나운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딱히 인상 깊었던 모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담은 책을, 그녀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 살구색 표지의 책을 내 놓았고 난 그녀의 삶을 엿보게 되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인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과정과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남편인 조기영 시인과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기까지의 과정까지.
가을의 한복판이다.
굳이 계절을 타지 않는 사람이라도 변해가는 거리의 풍경과 조금씩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씨 때문에라도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울 것이며 또 가슴 가득 뭉클한 사랑을 안고 싶은 그런 요즈음이다. 그래서 선택했다.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시인과 결혼한 아나운서라는 흔하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점도 있고 해서
남편과의 사랑 얘기를 가득 담은 책이라 생각해서 선택했다. 세상에 흔하지 않은 이 사람의 사랑을 엿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서 선택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물론 남편과의 사랑 얘기도 함께 있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그녀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어머니를 돌아 보게도 하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하기도 하고, 과연 살아가면서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게도 하는 그런 책이다.
때로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생각해 봤을 법한 고민들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미사여구가 없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글이 아닌 그녀의 진심을 담백하게 또박또박 써 내려간 것이 좋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글을 쓰는 실력은 아직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좋았다.
멋있는 말과 화려한 꾸밈으로 점철된, 교정 수준이 아니라 매끈하게 다시 만져진 글을 자신의 책이라고 내 놓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좋았다.
존경스럽다.
그녀는 존경한다는 의미를 그 사람과 닮고 싶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사람의 삶 하나하나를 흠모하고 그 사람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 한 권으로 고민정이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가치관을 쫓으며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기에 비록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스럽다라는 생각을 했다.
딱 한 가지만 더 충족된다면.
그녀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아나운서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면서 꽃이 아닌 언론인으로써의 아나운서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정권의 언론 탄압 때 MBC 아나운서들이 언론을 수호하기 위해 UCC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고,
권력에 의한 언론 지배를 거부하며 MBC가 장기 파업할 때 난 어디서도 그녀의 이름을 볼 수 없었다.
KBS니까 MBC일에는 상관없다라는 것은 언론인으로써 아나운서라는 그녀의 마음가짐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KBS의 이광용 아나운서는 MBC 파업을 후원했었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KBS의 파업 때문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시사, 교양국의 피디와 기자들만이 파업했다는, 농성했다는 얘기만 들렸다.
그래서 그녀에게 묻고 싶다.
그 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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