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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실내 인간-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by Robin-Kim 2013.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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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 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 지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두색 바탕에 하얀색 네 글자. 극도의 단순함.

최근 유행하는 예쁘장하거나 시선을 잡아 끄는 독특한 일러스트로 포장된 표지가 아닌 말 그대로 최대한 단순하게 포장된 표지.

그 때문이었다. 이 책에 끌린 것은.

 

표지를 열어 보니 예전에 산문집을 한 번 발표한 작가였다.

특이할 만한 이력도 없고 어딘가에 등단한 적도 없다.

표지만큼이나 이력 사항도 지극히 단순했다.

 

내용은 꽤나 담백했다.

화려하지 않은 표지, 지극히 단순한 이력에 비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술도 좋았고 짜임새도 괜찮았다. 몇 가지 오류를 빼곤.

사실 이 오류 때문에 초반에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었다.

 

방세옥이라는 예명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용휘.

사랑했던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작가라는 거짓말을 했던 용휘는 무명 작가라는 자책감으로 그녀와 헤어진다.

성북동 부촌에 산다는 배경을 가진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했지만 한 번 빠진 자괴감에서 그는 헤어나올 수 없었다.

이른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을 혼자서만 인정하고 혼자서만 고민하고 혼자서만 결론을 내린 것.

이별했지만 어디서나 그녀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고 또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는

전업작가가 되고는 책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시끄럽게 짖어댄다는 이유로 동네 개를 죽이거나 서점에 고의로 화재를 일으킨다거나.

이 책의 오류 중 가장 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출판 업계에서는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범인이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방세옥 (용휘)은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화재 사건 정도면 경찰이 꽤나 심각하게 조사했을 터이고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하면

경찰이 충분히 현장 조사와 주변 탐색을 통해 용휘를 용의 선상에 올려 놓고 수사를 벌였을 텐데,

그러고 나면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된 시대에 그가 범인으로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일 텐데 그냥 두루뭉수리 하게 넘어간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초라고 하기엔 너무 어설프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변이나 이야기 전개를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부분이 간혹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봤을 때 그다지 큰 흠은 아니다.

오히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극히 단순한 이력에 비해 담백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삶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아직도 최고의 드라마로 꼽는 추적자에서 황반장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사는 게 참 별 기 없다, 그쟈?  처음에 서울 올라올 때, 남들맹키로 폼 나게 살고 싶었데이.

사는 기 신산스러워도 요 고비만 넘기면 될 낀데, 요 고비만 넘기면 진짜 내 인생이 시작 될 낀데 하고 50년을 넘게 안 버팄나.

그칸데 지나고 보니 그 고비고비가 다 인생이었는기라.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은 영원히 몬 사는 기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 하긴 싫은 하지 않고 살겠다고 혼자 다짐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수는 없어도 최소한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달고 다니던 그런 때였다.

하지만 생활 계획표도 계획대로 안 되는데 사람일이라는 게 어디 계획대로, 마음 먹은 대로만 될 수가 있겠는가 (드라마 추적자 대사 인용).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고 놈의 먹고 산다는 게 뭔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순간이 고비였다. 이 번만 넘기면, 이 위기만 넘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

지나가면 또 오고 지나가면 또 오는데 이 것 또한 지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 보면 그런 위기와 고비의 순간이 다 내 인생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은행에 적금 쌓이듯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다시 말하면 과거의 나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나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부끄럽다고, 지워버리고 싶다고 그 때의 내가 내가 아닐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용휘는 스스로의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이별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그래서 그녀와의 끈이 아직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방세옥이라는 예명으로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그가 그토록 스스로 낮게 질책했던 수준의 글을 좋아했으나 유명해지기만 하면 예명이라도 그녀가 그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갖은 해괴한 그리고 불법적인 방법을 만들어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목표만 달성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목표는 달성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것도 '안 팔리는' 시집을 낸 시인, 가진 것 없는 시인의 아내가.

 

허탈했다. 후회했다. 그렇게까지 했어야 싶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방세옥이라는 예명을 썼어도 그것은 용휘의 인생이었고 그런 후회로 점철된 시간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용휘가 된 것이니까.

그래서 떠나기로 한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 없는 그런 여행을.

 

극을 이끌어 가는 화자 용우도, 용우의 친구 제롬도, 용휘가 쓴 글의 퇴고를 맡아준 소영도

결국 용휘의 주변에서 용휘라는 비밀스러운 인물에 대해 신뢰를 하기도 하고 의심도 하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인 걸.

의구심에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끝없는 믿음을 갖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며

그런 과정과 시간을 통해 내 인생과 그 대상의 인생에서 교집합이 생기고 추억이 쌓이게 되는 것이 인생이고 삶의 본질인 것을.

 

꼭 문학일 필요는 없다.

사람이 사색하고 생각하고 가슴 한 켠에 무언가 묻어둘 말을 만들게 되는 동기가 반드시 등단한 사람의 '문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작품을 거듭할수록 몇 가지 어색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보다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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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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