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하는 얘기지만 편견이나 선입견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의 지속적인 직간접적 교류가 있기 때문에 생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러니까, 저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등과 같은 것들은 결국 기존에 그 대상이 보여준 모습에 익숙했고
그런 익숙함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란 얘기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작가였다.
[매스커 레이드 호텔]로 처음 접한 이 작가는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탁월한 추리 소설을 읽게 해주었다.
복잡하고 꼬일 대로 꼬이고 어디선가 남겨 둔 복선과 암시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언제든 신뢰할 수 있다는 기반이 만들어 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읽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내용 그 자체로는 좋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추리가 상실되어 있어서 살짝 실망을 했었는데
최근에 읽은 [새벽 거리에서]는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건 추리 소설이 아니라 완전히 불륜 소설이다.
전형적인 중산층, 평범한 가정의 가장 와타나베와 어린 시절 살인 사건을 경험한 30대 초반의 미혼녀 아키하는 말 그대로 불륜 관계다.
불륜이란 것이 대부분 그렇지만 ‘불륜을 저질러야지’라는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어찌하다 보니 심각한 불륜 관계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불륜 관계에 양념으로 섞인 아키하가 어린 시절 겪은 살인 사건 이야기.
거기에는 추리도 없고 긴장감도 없으며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동기도 없었다.
말 그대로 불륜 이야기에 살인 사건이 양념으로 더해진 것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편견 혹은 선입견이 처참히 무너졌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래 전 출판 된 책인가 하고 살펴 봤더니 불과 2년 전에 나온 책이었다. 일본에서는 언제 출판됐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란 언제나 변화를 꿈꾼다.
야구에서도 3할 5푼 정도를 칠 수 있는 타자가 어느 날 홈런타자로 변신을 하려고 하는 이유도 변화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언제나 성공적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장르의 소설을 계속 쓰다 보면 새로운 형태와 내용의 글을 써보고 싶은 욕구가 당연히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도전 역시 언제나 성공한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기존에 쌓아 놓았던 자기 만의 튼튼한 울타리마저 무너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
그만큼 변화란 위험한 마약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참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충분히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자기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변화를 시도하려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발 다음 작품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그만의 소설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한 번은 더 기다릴 수 있으니까.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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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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