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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남자:엔딩 크레딧

영화 뜯어 보기: 회사원-이 시대 회사원들의 슬픈 자화상

by Robin-Kim 2013.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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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인터넷 상에서, ‘배우김태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십중팔구 연기를 못한다는 내용이다.

표정도 다 똑같고 연기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이 대부분인데 사실 김태희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까지 욕 먹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농도 짙은 내면 연기까지는 몰라도 그다지 어색하다거나 연기를 아예 못한다거나 표정 연기가 다 똑같다거나 하는 걸 잘 못느껴서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소지섭이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 배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영화는 영화다], [유령], [카인과 아벨] 등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다 똑같다.

늘 진지하고 인상 쓰고 있는 역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그에게 딱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하지만 한중 합작 영화 [소피의 연애 매뉴얼]에 등장한 소지섭은 정말 꽝이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못 봐줄 정도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만큼 그가 할 수 있는 연기는 한정적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회사원]은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로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뽐낸 영화가 아닌가 싶다.

 

 

 

아르바이트건 인턴이간 신입사원이건 회사에 입사한다. 열심히 일을 하고 실적을 낸다. 그리고 승진을 한다.

어느 정도까지 승진하고 나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도태되거나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거나 하는 것.

도태되면 퇴물처리 되는 것이고 밟고 올라선다면 더 높은 곳까지 올라설 수 있는 곳이 현대 사회의 회사라는 조직이다.

 

낙하산도 있다.

누구의 가족, 친족, 더 강한 사람의 청탁으로 능력과는 상관없이 높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낙하산이라고 부른다.

협업도 중요하다.

어차피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같은 부서 외의 동료들과도 얼마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가,

어떤 평판을 갖게 되는가도 승진에 있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나 영화를 보지 않고 예고편만 본 사람이나 이 영화의 줄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을 테니 줄거리를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킬러로 포장되기만 했을 뿐 앞서 얘기 한 현대 사회의 회사라는 조직의 의미를 충분히 보여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실적 좋은 지형도 (소지섭)는 자신의 직속 상사인 진재국 부장을 퇴물처리 하고는 그 자리, 부장이라는 자리에 올라선다.

전 직원이 등산을 가서 받게 된 부장이라는 명패를 받아 들고 지었던 표정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모시던 상사를 해고시키고 올라선 자리, 월급도 오르고 각종 복지 혜택도 늘어날 수 있는 자리,

하지만 자신도 한 순간 삐끗하면 누군가에게 짓밟혀 해고처리 될 수밖에 없는 자리.

 

권종태 (곽도원)는 낙하산이다.

사장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숨막히는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킬러로써의 현장경험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라는 직함을 달게 된다.

그리고는 사장의 총애를 받는 지형도와의 경쟁 관계와 긴장의 끈을 영화 내내 늦추지 않은 채 신경을 자극한다.

 

 

사내의 모든 직원들도 결국에는 지형도에게 등을 돌리는 대신 총구를 겨눈다.

상사의 명령에 따라 그를 해고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목숨을 내 건채 지형도를 해고 시키기 위해 앞장선다.

평소의 친분은 온데 간데 없다. 그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동료이자 선배이자 상사이자 후배인 지형도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이다.

 

그래서 부쩍 차가워진 요즘의 날씨만큼이나 참으로 씁쓸하다.

이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어느 새 내 주위엔 적으로만 가득하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 참으로 씁쓸하다.

 

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진실을 마주하고는 그것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어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열광한다고 했던가.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런 모습인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씁쓸하다.

 

어릴 적 잘 나가던 아이돌 가수였지만 지금은 장성한 두 남매의 엄마이지 가난한 미싱공으로 살아가는 유미연 (이미연)과 지형도의 연애 관계,

아르바이트 생이던 라훈 (긴동준)과 전임 부장 (유하복)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채 위험 요소를 시한폭탄처럼 끌어안고 있었던 이유,

회사에서 퇴출되어 숨어 지내면서 지형도의 인생 선배 역할을 하던 반지훈 (이경영)의 갑작스러운 회사 복귀와

그것을 빌미로 한 지형도에 대한 배신과 같은 것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영화의 완성도 면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꽤나 혹평을 받았다.

심지어 사무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관총 난사를 포함한 강렬한 총격전도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

같은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의미나 평가가 달라지듯이

개인적으로 그런 불완전성이 오히려 반전이나 우리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치열한 총격전을 선물한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그림으로 보면 회사원이라는 제목처럼 조직의 일원으로써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그려나가는 부수적인 장치들이라고,

대신 킬러라는 것을 소재로 선택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본다면 그다지 크게 거슬리는 것들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던 마지막 부분의 총격 장면이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장면을 담은 영화가 있을 수가 있구나라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방탄 조끼 하나로 여러 방의 총을 맞고도 살아 남은 지형도의 모습에는 살짝 실망이 들기도 했지만.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 부산을 떨며 회사로 출근을 한 것이다.

이번 주도 그럴 것이며 다음 주도 그럴 것이고, 한달 후나 일년 후. 아니 10년이 지나도 같은 일은 매 번 반복될 것이고 또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고 낙하산으로 들어온 능력 없는 윗사람의 비위를 맞출 것이며, 대출금과 가족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얼른 돈을 모아 지형도처럼 작은 찻집 하나를 운영하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은 꿈을 가진 채 그런 스트레스를 참아갈 것이다.

 

 

회사원은 그런 영화다.

킬러라는 소재, 그래서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을 뿐 오쿠다 히데오의 마돈나혹은 [월스트리트 몽키]라는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영화 [마진 콜]의 직원들처럼 그렇게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가진 영화다, 라고 생각한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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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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