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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남자:엔딩 크레딧

고전 명작 다시 보기 (14):No.3 (넘버 3)- 치열한 전쟁 중인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by Robin-Kim 201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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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도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태어나면서부터 서열을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주변의 욕심과 기대로 인해 그 전쟁에 동참하게 된다는 뜻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만 그 전쟁을 치르면 될 줄 알았던 우리는

그 전쟁은 20살 이후의 진짜 전쟁을 위한 조그만 예행연습이었다는 것을 사회에 나오면서 깨닫게 된다.

 

학창시절 등수로 매겨지던 순위는 학교의 등급으로 바뀌고 다니는 회사의 등급으로 바뀌며 갖고 있는 재산의 등급으로 바뀐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아니 그 진정한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사람들의 행동은 둘 중의 하나로 나뉜다.

그나마 예전이 낫다고 옛 것에 대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소주 한 잔에 추억 팔이를 하며 현재의 시름을 잊거나,

아예 그것으로부터 도피하여 한적하고 조용한 생활을 찾아 떠나거나.

 

 

 

No.2의 배신, 그것에 대한 응징.

보스 (안석환)가 혼수상태일 때 조직을 장악하려던 No.2 No.3인 태주 (한석규)의 도움으로 보스가 깨어나면서

처절하게 응징되고 태주가 No.2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태주는 보스의 오른팔로써 조직을 다양한 일을 맡아 처리하게 되는데 기존 No.2를 응징할 때 등장했던 재떨이가 눈엣가시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태주는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누군가가 자신에게 No.3라고 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러면서 No.2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확인시켜준다

 

사실 이 부분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스쳐 보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와 현재의 모습을 평가하는 굉장히 슬픈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No.3 No.2든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어떤 조직의 No.2라는 것은 No.3라고 하는 것보다 무언가 있어 보이니까.

남들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니까.

 

결국 남의 시선에 의해 살아가는 우리는 No.2가 되는 순간 No.1이 되기 위한 전쟁에 또 다시 뛰어든다.

마치 ‘No.1은 해보고 은퇴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동거녀 현지 (이미연)에게 계속적으로 얘기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그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소리 높여 말한다.

누군 불안하지 않은 줄 알아? 나도 바닷가 같은 곳에서 애 낳고 남들처럼 살고 싶어라고.

 

 

그 전쟁에서 이길지 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면 퇴출되는 것이고 이기면 올라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다. 누구에게 공격을 받을 지, 언제 어디서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퇴출된 자는 그 곳을 떠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다른 삶을 찾아야 하며 이기면 더 나은 대접을 남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치열하게 치러낸 전쟁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꽤나 다양한 방법, 심지어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며 처절하게 전쟁을 치러나간다.

자신의 조직을 점점 옥죄어 오는 마동팔 검사와 맞장 뜨는가 하면 결국엔 보스의 지시에 의해 마동팔 검사를 죽이게 되는 태주처럼.

혹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재떨이와 대립 각을 세우며 사사건건 피 말리는 경쟁을 하게 되는 태주처럼.

결국 태주는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네 직장인의 슬픈 자화상을 표현하는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하지만 태주에겐 결국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이 더 소중했는지 모르겠다.

그토록 꿈꿔왔던 No.1 자리를 포기하고 마동팔 검사를 살려주어 조직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주었던 것.

결국 스스로 잡혀 들어가 인생의 몇 분의 일을 어두운 감방에서 살게 된 태주는 몇 년 후 자신의 아들이라며

현지가 데리고 온 사내 아이와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내내 볼 수 없었던 태주의 환한 웃음이 그 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을 때 나오게 된다

 

 

반면 누군가가 밖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안에서 그 누군가를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조용함 사이로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혹은 내 꿈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이 비집고 올라서며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 걸음씩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현지로 상징되는 시대의 주부들.

 

시라는 것에 매료되어 랭보 ( 박광정)라는 시인으로부터 시 쓰기에 대한 수업을 받는 현지는 몇 번의 개인 교습 끝에

거친 태주와는 전혀 다른 섬세함을 가진 랭보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바람이 나게 되는 전형적인 코스를 밟아간 것.

하지만 태주의 부하에게 먼저 발각되고 다행히 태주에게는 발각되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작시 스물 아홉 섹스는 끝났다를 쓰고는 시 쓰기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출판의뢰까지 받게 된다.

스스로의 꿈을 이루기 직전까지 가게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태주가 잡혀 들어가자 시집을 내고는 자극적인 대목 덕분에 인기스타가 되지만 랭보와의 스캔들로 잠적하고 만다.

그리고 몇 년 후, 자신이 낳은 태주의 아이와 함께 교도소의 태주를 면회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맺음 하려는 장면일수도 있겠지만,

현지가 만약 시집을 내지 않고 스타가 되지 않았다면 태주가 교도소에 잡혀간 상황에서

출산과 양육이라는 것을 감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꿈도 중요하지만

결국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돈이란 것도 중요하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현실적인 이유로 꿈을 행동으로 옮기는 못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조용한 위로일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1997 8월에 개봉된 이 영화는 IMF 직전에 개봉되었음에도 IMF 이후 서민들의 삶을 제대로 표현해 주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직장에서의 전쟁,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 명예퇴직에 의한 퇴출, 경제적 불안감과 그것으로 인한 주부들의 급격한 사회진출 증가 등이

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가족이 있다.

IMF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소설 아버지로 증명 되었듯이 잊고 있었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되돌아볼 만큼

가족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해체되거나 재결합되는 여러 가지 모순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이 태주의 아이가 현지와 함께 등장한 것은 결국은 가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영화적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16년전 작품이다 보니 이야기의 치밀함이나 짜임새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조폭과 검사가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설정도 또 동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다가 맞장 뜨고는

비 내리는 놀이터에서 담배 한 대씩 나눠 피며 이런 저런 대화를 한다는 설정도,

No.1이 그토록 꿈이었던 태주가 느닷없이 조직과 보스를 배신한다는 설정도,

마지막 부분에 일본 조폭과 싸우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설정도,

랭보와 지나 (방은희)가 룸싸롱 빈방에서 정사를 나누는 장면도 억지 춘향 격으로 끼워 맞췄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특히나 이 영화로 유명해진, 사실은 이 영화를 패러디 한 개그맨들 덕분에 유명해졌지만,

송강호가 이끄는 조직의 모습과 어떻게든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 신문에 나서 유명해지고 싶은 조직원들의 심리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조폭을 소재로 하는 액션물에 코미디를 섞는다고 섞은 것이 꼭 물에 기름을 섞어 놓은 것처럼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2000년대 들어 극장가를 휩쓸었던 [두사부일체]와 같은 조폭 영화가 탄생한 밑거름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No.3 No.2가 되고 싶어한다. No.2 No.1이 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No.1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을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을까?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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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섹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dhdd&logNo=40194746938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ulz3&logNo=30175349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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