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늘 부지런해 동네에서 제일 가는 부자 오생원. 그 집에는 말 못하는 하인 삼룡이와 망나니 아들이 있다.
삼룡이는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키도 작고 얼굴도 얽은 요즘 말로 최악의 조건을 가졌고,
망나니 아들은 그런 삼룡이를 툭하면 괴롭히고 때리지만 삼룡이는 무던히도 참아준다. 주인집 아들이니까.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 망나니 아들은 자라서 결혼을 하지만 여전히 개차반 같은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툭하면 아내를 때리기 일쑤고 주변 사람들이 '결혼까지 했는데 부끄럽지 않냐', '이제 어른이 돼야지'라는 얘기를 할 때마다
아내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다고 생각하여 더욱 더 아내에게 폭행을 가한다.
하지만 삼룡이 눈에는 그저 천사로만 보이는 새아씨, 그러니까 망나니 아들의 아내.
그녀가 매를 맞을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게 생각하던 삼룡이는 자기도 모르게 연모의 마음을 갖게 된다.
어느 날 심하게 매를 맞은 새아씨의 상태가 궁금하여 늦은 밤 몰래 방을 엿보던 것이 발각되고
이를 오해한 망나니는 삼룡이를 초 죽음이 될 때까지 매질을 하고는 집에서 쫓아낸다.
여태까지 한 번도 주인 집 망나니 아들에게 반항한 적 없던 삼룡이는 이에 복수의 마음을 갖고는 집에 불을 지르고
새아씨를 구출해 지붕으로 올라가지만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숨이 끊긴 그의 무릎 위에는 새아씨가 뉘어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여기 저기서 이 소설이 낭만주의 소설이라고 확신하며 얘기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부분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연모의 감정이 소설에 등장했다고 낭만주의 소설이라고 한다면 소설 혹은 문학이라는 것이 태동한 이래 낭만주의가 아닌 것이 있었던가.
오히려 당시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신분을 넘는 연모의 감정을 통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박되고 구속될 수 밖에 없는
신분제도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삼룡이를 통해서 표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래 내용을 보자.
'나는 벙어리다' 자기가 생각할 때 그는 몹시 원통함을 느끼는 동시에 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자유와 똑같은 권리가 없는 줄 알았다.
그는 이와 같은 생각에서 언제든지 단념 않을래야 단념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단념이 쌓이고 쌓이어 지금에는 다만 한 개의 기계와 같이
이 집에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천직으로 알고 있을 뿐이요, 다시는 자기가 살아갈 세상이 없는 것 같이밖에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삼룡이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다.
벙어리라는 장애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애로 인해 자신이 머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봐서는 안 되는 주인집 새아씨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품게 되며 그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동기 역시
주인집 아들에 의한 '권력의 횡포'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계급 사회에 의한 권력을 비판한 것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할는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해 본다.
100년 정도가 지난 지금, 그런 계급은 현대사회에서도 보이지 않게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돈'이 되어 버렸다.
가난한 사람이 부잣집 자식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삼룡이가 새아씨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들며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데렐라 이야기에 반색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꾸로 얘기하하자면 이미 100여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Leggie...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 그 소설 (3): 김유정-동백꽃 (0) | 2013.08.30 |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추리가 빠진 히가시노 게이고 (0) | 2013.08.28 |
행운흥신소 사건일지-고정관념을 깨준 재미있는 소설 (0) | 2013.08.13 |
남미, 나를 만나기 위해 너에게로 갔다/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가슴이 뛴다 (0) | 2013.08.08 |
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 기계치의 부실한 변명으로 일관된 책 (0) | 2013.07.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