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소설이라고 해야 하는지 현대 소설이라고 해야 하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일제 감정기 시대의 작품들을 보면 유난히 계급에 대한 소재가 많다.
아무래도 조선 왕조 내내 지속되었으며 그것을 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드렸던
사농공상이라는 제도를 일제시대에 들어서 젊고 배운 작가들을 중심으로 계급을 뛰어 넘는 사랑 혹은 인간관계 같은 것으로
타파하려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유정의 [동백꽃]도 마찬가지다.
지주 혹은 유지의 딸인 점순이는 자신 집의 소작농 비슷한 집의 아들인 '나'를 좋아한다.
한창 울타리를 치며 열심히 일하던 '나'에게 점순은 '너네 집엔 이런 거 없지'라며 감자 몇 알을 불쑥 내민다.
하지만 감자보다 점순의 말에 불쾌했던 '나'는 감자를 받지 않았고 그 이후 점순의 행패는 시작된다.
바로 자신의 힘 세고 튼실한 수탉과 '나'의 평범한 수탉을 닭 싸움 시키는 것.
결과는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점순네 수탉의 부리에 찍힌 '나'의 수탉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마는 것.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달려가서 점순네 닭을 패대기 치고 점순한테도 한 소리 하고 싶지만
'나'의 부모님이 점순네 부모가 아니었다면 먹고 살기 힘들었을 거라며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여나 쫓겨 날까 봐 그렇지도 못한다.
그리고는 '나'의 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는 등의 방법을 통해 닭 싸움에서 이겨보려 하지만
이미 체급이 다른 게임이라 별 소득이 없어 낙담하던 차에 또 한 번 점순이가 붙인 닭싸움을 발견하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쫓아가 점순네 닭을 패대기 쳐 죽여 버린다.
이에 점순은 뉘 집 닭을 죽였냐고 다그치고 '나'는 분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복잡한 감정에 엉엉 울고 마는데
점순이 '나'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 내고는 죽은 닭 일은 모르는 척 하기로 한다.
그러고는 주저 앉아 있던 '나'의 위로 몸뚱이를 겹쳐 노란 동백꽃 속으로 쓰러진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나'의 가족은 점순이네 가족의 덕을 보며 살고 있는,
그러니까 인심 좋은 유지의 도움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소작농 가족이다.
따라서 '나'는 점순이의 잘못에도 화를 낼 수도 없고 점순이가 하라는대로 해야만 하는 슬픈 운명인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이 행복한 듯한 느낌으로 끝났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와 점순이의 관계다.
당시의 관습과 사고방식으로는 넘을 수 없는 강 같은 것이다.
김유정은 그런 것을 달달하게 포장해서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어찌해볼래야 어찌할 수 없는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붙어 다니는 신분이라는 계급에 대한 우회적 조롱말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노란 동백꽃'이란 점인데 우리기 흔히 알고 있는 동백꽃은 빨간색이다.
그런데 왜 노란 동백꽃이라고 김유정은 표현하였을까?
여기저기 찾아보니 김유정의 고향 (현 김유정 역 부근)에는 생강나무가 많은데 그 생강나무에 피는 꽃을 동백꽃이라고 했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또 다시 이상해지는 것이 '노란 동백꽃 속으로 쓰러진다'라는 표현이다.
생강나무 꽃은 말 그대로 땅 에서 자라며 피는 꽃이 아니라 나무에 피는 꽃, 그러니까 나뭇가지에 핀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속으로 쓰러진다니 뭔가 상황이 안 맞는다.
김유정이 이야기한 '노란 동백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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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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