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 (戰士)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남자에게 어울리는 단어였다.
'였다'라는 과거형을 사용한 이유는 더 이상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영역 싸움의 문제로 전투와 전쟁은 종족간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뛰어난 남자들이 전투를 이끌어 왔던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역시 현실을 반영하는 탓인지 남자의 전투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여자가 주인공인 전투 혹은 전쟁 영화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잔다르키 외에는 기억에 남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지난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 시작은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 (안젤리나 졸리)가 아닐까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육감적인 몸매에 타고난 체력, 엄청난 근육량과 뛰어난 격투 기술은 이야기 구조 상 전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
렇다고 전사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거시기한 캐릭터인 라라 크로포드는 안젤리나 졸리가 아니면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 싶은 강한 전사였다.
그리고 21세기, 두 편의 여 전사 영화가 우리에게 찾아왔으니
흑진주 조 셀다나의 [콜롬비아나]와 레지던트 이블의 주인공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울트라 바이올렛]이다.
사실 이 두 영화는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만 빼면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액션영화다.
우선 영화의 배경이 [콜롬비아나]는 현재인 반면 [울트라 바이올렛]은 미래 도시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복수'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콜롬비아나]라면
화려함을 넘어 80년대 중국 총격 액션의 수준에 버금가는 볼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울트라 바이올렛]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몸 담고 있던 범죄 조직의 배신으로 부모가 총격으로 사망하고 어렵사리 살아 남은 카탈리아는
미국 대사관을 통해 범죄 조직의 손길을 피해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감시망이 느슨해진 틈을 타
시카고에 있는 삼촌 에밀리오 (클리프 커티스)를 찾아간다.
역시 동네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삼촌에게 카탈리아는 자신은 킬러가 되고 싶다며, 킬러로써의 교육을 시켜주기를 원한다.
머나 먼 미래 도시, 덱서스라는 과학자는 HGV라는 의문의 바이러스를 발견, 그 바이러스를 통해 인간의 종을 변질시켜
엄청난 초인군단을 창조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바이러스가 유출되면서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져
돌연변이들을 발생시키고 만다. ‘흡혈족’이라 불리는 돌연변이들은 강한 육체적 힘과 엄청난 전투적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에 위기를 느낀 덱서스는 인간세상의 평화를 주장하며 돌연변이들을 색출, 멸종시키는 데 주력하고
돌연변이들 또한 ‘너바’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직을 이뤄 ‘덱서스’에게 저항한다.
어느 날, 돌연변이들에게 치명적인 무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덱서스는 이를 운반하기 위해 최고의 비밀요원을 불러들이게 되지만,
비밀요원으로 위장 잠입한 바이올렛에게 그 비밀무기를 빼앗기게 된다.
비밀 무기를 탈취한 그녀는 이송 도중 무기의 실체가 아직 어린 아이인 것을 알고는 너바와 덱서스로부터
아이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다.
킬러가 된 카탈리아는 삼촌이 의뢰 받은 일을 처리해가면서 어린 시절 부모를 죽인 대상을 향한 단서를 남기고,
카탈리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 사실은 그녀의 최종 표적인 돈 루이스와 마르코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반면 킬러라는 자신이 선택한 운명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 채 한 남자를 사랑한 카탈리아는
그 남자의 집에서 늦잠을 자는 동안 얼굴이 사진에 찍히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그 사진은 남자의 친구를 통해 경찰서로 입수되며 정체가 드러나고 경찰에 체포될 위기에 놓이지만
가까스로 탈출하고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원수를 갚게 된다.
열 몇 명이 동시에 총을 쏴도 한 발도 안 맞을 정도 총보다 빠른 반면 총을 들고 대충 휘둘러도 적은 다 죽고,
오토바이로 벽을 타며 첨단 과학으로 총과 칼을 자유자재로 변환시키며 들고 다니는 능력까지 있는 바이올렛은
단지 자신이 임신했을 때 덱서스에 의해 아이를 강제로 유산 당했다는 기억 하나로
Six라는 이름의 꼬마아이이자 덱서스의 클론을 보호하는데 목숨을 바친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시한부 생명이었던 바이올렛은 덱서스와의 싸움에서 이겨 Six를 지켜내기는 하는데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중반 이후 졸면서 보느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사실 액션 영화라는 것 자체가 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을 어렵게 하는 장르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나 다이하드 시리즈 혹은 트랜스 포머나 익스펜더블 또는 분노의 질주 같은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인생과 미래를 생각했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으니까.
그저 영화를 보는 순간 화려하고 격렬한 장면들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름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액션 영화라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울트라 바이올렛]이 보여준 쌍팔년도 영웅본색 식의 액션이나 짜임새 없고 지루하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전개는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비를 얼마 투여했고 액션이 얼마나 화려한지는 이제 선택의 기준이 되질 못한다.
이미 수 많은 영화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액션 속에 이야기 (Story)를 얼마나 잘 녹여 내느냐 하는 것인데
[울트라 바이올렛]은 그 점에서 실패했고 [콜롬비아나]는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훨씬 재미있고 몰입도가 높으니까.
[테이큰]의 각본을 쓴 로버트 M. 케이먼이 대본을 쓰고 [트랜스포터]의 올리비에 메가턴이 감독을 맡으며
이미 액션으로는 시작부터 한 수 깔고 들어간 [콜롬비아나]는 [레옹] 이후 소녀 마틸다를 주인공으로 한 여전사 영화를 기획하던
뤽 베송이 제작을 맡아 꽤 그럴 듯한 영화로 탄생되었다.
단순히 쏘고 치고 박는 영화가 아닌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기반하여 펼쳐지는 액션과 이야기라는 점에서 꽤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소재가 무엇이든 주인공이 누구이든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어떻게 녹아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
두 영화를 보고 난 후 든 생각이다.
Leggie...
'영화 읽어주는 남자:엔딩 크레딧'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뜯어보기:인타임-자본주의의 치부를 드러낸 아쉬운 영화 (0) | 2013.08.22 |
---|---|
영화 vs 영화 (10): 언노운 vs 메멘토 - 기억이란 어쩌면 가장 불확실한 도구 (0) | 2013.08.19 |
고전 명작 다시 보기 (13): 주먹이 운다-그들은 무엇을 위해 주먹을 내질렀을까? (0) | 2013.07.04 |
영화 vs 영화 (8): 레옹 vs 아저씨 - 킬러들의 운명 (0) | 2013.06.21 |
캐치44-부르스 윌리스의 이름 값은 얼마? (0) | 2013.06.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