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시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적어도 누구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더 적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으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모두는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갖고 살아가게 되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가는 각자의 몫이 되어 버린다.
시간이 없다고 죽는 경우도 없다. 오히려 시간이 너무 많아서 그 외로움과 지루함에 자살했다는 유럽 어딘가의 뉴스는 가끔 접할 수 있어도.
시간이 많이 흐른 미래의 어느 한 시점.
25세가 되면 더 이상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대신 화폐가 사라지고 시간이 거래의 대상이자 매개체가 되는 충격적인 시대.
술 값과 커피, 버스 요금과 대출금은 물론 임금까지 모두 시간으로 거래 된다.
시간이 많은 사람은 부자가 되어 그들만의 지역에 따로 살게 되고 시간이 적은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역인
데이튼에 모여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0'이 되면 그 즉시 죽게 되는 시대.
대신 서로가 팔을 맞잡으면 시간을 나눠줄 수 있다는 독특한 설정.
주인공 윌 살라스의 엄마는 단 몇 분, 몇 초가 모자라 주인공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어느 바 (BAR)에서 싸움을 도와주다 우연히 알게 된 100년의 시간을 가진 해밀턴은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어야 하는
현 시스템의 비밀을 알려주고는 100살이 넘은 나이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옳지 않다며
자신을 도와준 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시간을 모두 나눠주고 죽고 만다.
뜻하지 않게 많은 시간을 갖게 된 윌은 부자들의 지역인 '뉴 그리니치'로 향하고 그 곳 카지노에서 엄청난 시간을 따게 되는데,
돈을 잃은 사람은 거대 금융회사인 와이즈 그룹의 소유주인 필립 와이즈. 그는 윌을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한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든다. 왜 필립은 뜬금없이 윌을 집으로 초대했을까?
한 편 윌에게 시간을 주고 죽은 해밀턴의 사인을 파헤치던 타임 키퍼 (그 시대의 경찰)는 윌이 그 사람을 죽인 것으로 오인하고는
윌을 쫒아 와이즈 그룹 소유주의 집을 찾아가는데 윌은 필립의 딸 실비아 와이즈를 인질로 그 곳을 빠져나간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나 도망자의 신세가 편할리는 없으니 파티 복장으로 윌에게 인질이 돼버린 실비아는
윌에게 온갖 험담과 불평을 내뱉지만 함께 도착한 데이튼에서 그들의 생활을 보고는 연민을 느끼고 윌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든다. 왜 실비아는 뜬금없이 윌과 사랑에 빠지는가?
이제 두 사람은 공모자가 된다.
해밀턴이 알려준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어야 하는 시스템을 알게 된 실비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가 소유한 캐피털 사와 각종 은행으로부터 시간을 탈취하여 나눠주는 기행을 선보인다. 이른바 홍길동의 의적놀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시간으로는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서민들을 위해 '100만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윌과 실비아는
그 100만년을 탈취하기 위해 다시 '뉴 그리니치'에 잠입, 결국은 필립을 위협하여 100만년이라는 시간을 탈취하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지만 정작 자신들은 시간이 없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타임 키퍼가 그들을 쫒는 사이
시간 충전하는 것을 잊어버려 죽게 되자 그의 일당 (시간)을 가로채 다시 살아난다.
여기서 세 번째 의문이 든다. 왜 그들은 남들에게 시간을 나눠주고 자신들은 시간 충전을 안 했을까.
그리고 아무리 사랑에 빠졌다고 하지만 아버지를 위협하여 아버지의 전 재산을 강탈할 딸이 과연 존재할까?
영화 [인 타임]은 시간으로 상징되는 돈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 이 영화에서 '시간=돈'을 의미한다. 현실의 우리는 돈이 없으면 굶어 죽어야 하고 영화 속의 사람들은 시간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
현실에서 우리의 돈은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통제하고 영화 속에서 시간 역시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통제한다.
그것이 영화 초반부 해밀턴이 윌에게 해준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어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가진 자들은 물가를 올린다.
그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갖지 못한 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 그리고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한다.
결국 가진 자들은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갖지 못한 자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포기한다.
죽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진 자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더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그들은 그렇게 세뇌되었으니까.
그래서 가진 자들은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이 바로 금융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대출을 받고 또 그 대출을 갚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하고.
그것이 우리가 현재 세뇌되어 살아가는 방식이며 자본주의가 우리를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 이 영화에서는 '시스템 붕괴'라는 얘기가 간간히 나온다.
윌과 실비아가 필립의 캐피털 사에서 시간을 탈취해 나눠줄 때도, 필립으로부터 100만년이라는 시간을 강탈할 때도.
현실의 우리 모두가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넉넉한 돈이 있다면 아무도 열심히 일할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윌이 얻은 우연히 얻은 100년이란 시간 중 10년을 갑작스레 선물 받은 윌의 친구 보렐이 그 시간으로 매일 같이 술을 마시다 죽은 것처럼
그저 넉넉한 돈을 쓰고 즐기는 것에만 몰두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 것 역시 관점의 차이이며 어쩌면 가진 자들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공포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돈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마치 어느 날 수십억 수백억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파산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하지만 어려서부터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고 행동을 통해 그 교육을 몸으로 익힌 사람에게는 다른 얘기가 된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 하지만 가진 자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세뇌한다.
그리고 그 세뇌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쳐 놓고 못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 올 수 없도록 한다.
심지어는 그들을 한 곳에 몰아 넣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살게 하면서 스스로 세뇌되도록 한다. 영화의 '뉴 그리니치'와 '데이튼'처럼.
한 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386은 사회로 진출하면서 권력을 잡았고 그 것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바탕으로 얻게 된 돈'으로
자식들에게 값 비싼 교육을 시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했고 또 구축하고 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줘야 하므로.
그들이 욕했던 대상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아니다.
그래서 가진 자들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충분한 시간을 얻게 된 대규모의 사람들이 '데이튼'을 떠나 '뉴 그리니치'로 향하는 과정을
마치 무슨 난리라도 난 듯이 그려낸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더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리며
자기들끼리 편안하게 사는 행복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을 바탕으로 본다면 [인 타임]을 바라본다면 이 영화를 단순히 SF 영화나 액션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으로 본다면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 의문들 때문이다.
전혀 뜬금없이 이어지고 전개되는 이야기는 앞 뒤 인과관계를 따지자면 한 없이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영화임이 틀림없다.
뜬금없이 같이 포커를 치던 사람들 파티에 초대하고, 자기를 납치한 사람과 뜬금없이 불타는 사랑에 빠지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랑 때문에 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누며 아버지가 가진 재산을 강탈하는 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윌과 실비아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눠주고 자신들의 시간은 충전하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다. 훌쩍훌쩍 뛰어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가 그저 못마땅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팬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10센티미터가 넘어 보이는 하이 힐과 검정 스타킹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이리저리 쫓기고 뛰어다니는 수 많은 장면들은 과연 '이 배역에 꼭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써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을 남길 정도였으니까.
그녀의 각선미가 아무리 예쁘더라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건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는 소재를 이토록 무난한 영화로 만든 감독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헛되게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영화 속에서 해밀턴이 윌에게 100년의 시간을 주고서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모든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낭비한다던가 헛되이 쓴다는 것은 상대적이니까.
반드시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릴 필요는 없으니까.
가끔은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멍하니 있을 자유도 있으니까.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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