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같은 일 혹은 현상을 놓고도 받아 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충격 또는 상처의 깊이는 모두 다르다.
본인과 얼마만큼의 관계가 있는가, 직접적인 상처가 있는가 등에 따라 특정한 일이나 현상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함께 사는 개가 죽었다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26년 전 누나를 잃고 현재는 교통 경찰이 되어 살아가는 권정혁.
26년 전 아내를 잃고 그 정신적 충격에 술로 세월을 보내다 ‘그 사람’의 집 앞에서 분신 자살을 한 아버지를 둔 심미진.
26년 전 남편을 잃고 ‘그 사람’만 TV에 나오면 미치광이가 되는 엄마를 둔 곽진배.
그리고 26년 전 ‘그 사람’의 명령에 의해 총을 쏠 수 밖에 없었던 김갑세와 26년 전 부모를 잃고 김갑세의 양 아들로 자란 김주안.
그들은 모두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항쟁에서 가족을 잃었고, 또 누구는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그 상처에 고통스러워하며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반면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 ‘그 사람’은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 천억 원의 비자금을 갖고 있으면서도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는 이유로 재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
강풀의 원작 만화를 소재로 한 영화 26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이처럼 가슴 아픈 현실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며
그렇게 현재의 우리에게 광주를 재조명하고 있다.
사실 모든 역사적 사실 관계를 떼어 놓고 영화적으로만 본다면 이 영화는 약간 독특하기도 하고 뜬금없는 것이 사실이다.
도입부의 꽤 긴 시간인 광주 항쟁 부분을 애니매이션으로 처리 한 것은 독특하며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는 뜬금없다.
26년 전 광주에 계엄군으로 출동했던 김갑세가 일일이 가슴 아픈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세 명을 어떻게 찾아갔는지도 의아하고,
그들을 모아 복수를 하겠다고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찾아가는 방식도 어설프며,
2~30명 규모의 조폭들이 아무리 역사에 대한 복수를 한다지만 대 놓고 국가에 반 (反)하는 집단 행동을 한다는 것도 좀 과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임슬옹의 연기는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 독특하게 애니매이션 처리한 영화의 도입부.
하지만 동일한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운 영화 [화려한 휴가]의 감상문 (http://blog.daum.net/leggie/17187363) 에서도 언급했지만
더 이상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며 이제 역사는 진실 앞에 당당해졌음을 감안할 때 이 영화는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아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 것을 상상으로나마 건드리며 아픈 가슴을 다독여주니까.
국민들이 그 아픔을 공감하고 공유하는데 함께 앞장섰으니까.
2012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사실 2008년부터 제작에 들어갔으나 외압설과 크랭크 인 직전 투자금 회수 등
제작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속된 말로 ‘엎어질’ 위기에 처했었다. 2008년 당시 대통령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하면 뭐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아 영화를 만드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해 약 1찬 4천여 명이 참여하여
5억원이라는 모금 액을 돌파함으로써 세계적인 소셜 펀딩 사이트 kickstarter.com에서 현재 가장 큰 액수의 펀딩을 받은
유명 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최신 프로젝트가 달성한 406,237달러(약449,704,359원) 보다 높은 액수를 달성했다1.
그리고 그 결과는 개봉 11일만에 150만 돌파, 최종 관객수 2,953,092명에 211억 원이라는 매출로 이어져2
우리 국민들이 진실 앞에 당당해진 역사를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 국민 투자자들의 이름이 보이는 엔딩 크레딧
26년 동안 가슴이 켠켠이 쌓아온 그들 아니 우리들의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 사람’은 아직도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이 그 사실에 대해 애써 외면하며 거리를 두려하고 왜곡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씩 그리고 한 걸음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라고 생각해 본다.
비록 현재의 권력을 ‘그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부정한 방법으로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Leggie...
* 이 총구는 누구를 겨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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