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다:
마음이 끌리게 아기자기하고 기분이 좋다.
감칠맛이 있게 꽤 달다.
편안하고 포근하다.
커피는 쓰다. 커피를 내리는 향만을 생각하며 그대로 커피를 마시면 뱉어내기 일쑤다.
그래서 설탕을 넣는다. 설탕을 조금 넣고 숟가락으로 살살 저으면 달콤한 맛이 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블랙커피는 마시지 못한다.
그렇다. 달콤하다, 라는 말은 달콤하지 않은 맛을 알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이다.
쓰다, 짜다, 맵다와 같은 맛을 모르면 달콤한 맛을 알 수 없으며 그래서 달콤하다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국 달콤하다라는 것은 다른 맛들을 다 알고 났을 때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래야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달콤한 인생이란 달콤하지 않은 인생, 그러니까 쓰고 짜고 매운 인생을 알아야 간신히 쓸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 ‘달콤한 인생’의 선우 (이병헌)는 인생의 어느 시점이 가장 달콤했을까?
아니, 맵고 짜고 쓴 인생의 시점은 어디쯤이었을까?
조직 폭력배의 2인자로써 보스 강사장 (김영철)으로부터 자신이 서울을 비우는 3일 동안 불륜의 대상인 희수 (신민아)를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고는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다 희수가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없던 일로 할 테니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말 것’이라는 전제를 남기고
일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챈 강사장은 왜 즉시 자신에게 전화하지 않았느냐며 ‘배신’이라는 죄목을 씌워 선우를 죽이려 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난 선우는
자신이 몸 바쳐 일했던 강사장에서 오히려 배신감을 느껴 그를 총으로 죽이고 자기도 결국 죽는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에서 선우의 달콤했던 인생의 시간이 언제였는가를 알아 내기란 쉽지 않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꽤 비싼 오피스텔에서 돈 걱정 없이 살지만 조직 폭력배에 몸 담고 있었던 시간이 가장 달콤했는지, 보스의 신뢰를 듬뿍 받으며 조직에서
잘 나가는 시간이 달콤했는지 아니면 강사장에게 복수의 총구를 겨눈 부분이 가장 달콤한 시간이었는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이 영화는 무언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자칫 지루하려면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말게 하는 그 어떤 힘, 중간에 끊고는
그 다음이 궁금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그런 힘.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영화 제목인 ‘달콤한 인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주인공 선우의 달콤한 인생은, 그게 아니라면 맵고 쓰고 짠 인생은 어느 부분일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영화는 어느 새 끝에 와 있음을 알았고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막을 내린다.
어느 깊은 가을 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 슬픈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달콤하다는 역설적인 내용을 가진 이 나레이션은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을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일 뿐이다.
그렇다.
선우의 달콤한 인생은 강사장이 없는 동안 희수를 감시하며 느꼈던 일말의 짝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던 3일 동안이었다.
흡사 무엇에도 혹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不惑’이라는 단어처럼 보스의 명령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던 선우는,
몸의 여러 곳에 선명한 칼자국이 말해주 듯 맵고 짜고 쓴 인생을 살던 선우는,
단 3일 동안에 한 여자를 향한 짝사랑의 감정으로 흔들리는 감정을 느끼게 됐고 결국 그 3일이라는 시간이 가장 달콤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에 달콤할 수 밖에 없는.
결국 복잡한 줄거리보다는 도입부 나레이션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나레이션까지 가는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 이 영화는 영화의 제목처럼 주인공 선우에게 있어 ‘달콤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기에 약간 어설픈 이야가 전개 속에서도
시선을 붙잡힐 수 밖에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해 본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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