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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노서아 가비- 커피를 통해 본 조선 말기 역사

by Robin-Kim 201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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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명이 등장하는 [인간희극]을 쓴 발자크는 평생 5만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잔의 크기는 둘 째 치고라도 5만 잔이라니, 2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다섯 잔을 마셔야 하는 그 수치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한 집 건너 카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피 공화국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 (특히 서울)에는 너도나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안달 난 사람들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도 커피를 마시긴 한다.

자주 마시진 않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나 사무실에서 어쩌다 한 잔씩 마시곤

하는데 예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달달한 커피 믹스다.

입 맛이 싸구려라도 좋다. 내 입에는 그게 맞으니까.

 

원래는 영화로 먼저 접했더랬다 (영화 제목은 그냥 '가비'다).

그렇다고 영화를 본 것은 아니고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을 한 번 보고는 잊어버렸는데 서점에서 책을 보다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이 바로 그 영화의 발단이자 동기, 그러니까 서양말로 하면 모티브였다.

그러고 보면 내 기억력도 꽤 쓸모가 있는 듯하다.

아직까지는.

 

 

노서아는 러시아, 가비는 커피를 한자로 표기한 것을 읽은 것이다.

그러니까 노서아 가비는 러시아 커피를 뜻한다.

 

조선 시대 말기, 역관이었던 아버지가 음모에 의해 살해 되자 귀양가서 죄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싫었던 안나는 홀로 조선을

탈출한다. 유명한 화가의 낙관을 위조한다든지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을 살려 청나라를 거쳐 러시아로 들어간 안나는

따냐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숲을 유럽 귀족에게 판매하는 사기 집단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또 다른 사기꾼 집단의 조선인

이반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각자가 속해 있던 집단을 배신하고는 함께 새로운 사기 집단을 만들어 사기를 치던 중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고,

조선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는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시절 그를 모시는 중심인물이 된다.

이반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 및 이완용과 결탁하여 온갖 재물을 모으고 따냐는 고종황제에게 매일 아침 러시아 커피,

그러니까 이 책에 의하면 '노서아 가비'를 만들어 올리는 어명을 받게 되는데, 한 번 사기꾼은 영원한 사기꾼이라고

이반은 따냐를 설득하여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하고는 미국 뉴욕으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이 뒷이야기는 스포일링을 방지하기 위해 언급하지 않겠다)

 

 

 

사실 이 책의 이야기는 상당히 빠르게 전개되고 그만큼 많은 것이 압축되어 있다.

원래 내용이 압축되면 기본적으로 이야기 전개가 부실해질 뿐 아니라 앞 뒤 상황이 두서없이 전개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좀 다르다. 물론 조금 억지스러운 몇 개 국어에 능통하고 그림을 잘 그리며 위조까지 잘하는 능력을 가진

여주인공이라는 캐릭터가 여간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다-면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 전개가 깔끔하다.

거기에 몇 가지 복선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긴장감까지 더해주니 꽤 괜찮은 소설임에 분명하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이 망하고 타의에 의해 대한제국이 들어서는 어쩌면 우리 민족사에 가장 슬픈 시대를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낯설던-사실 서양에서도 커피는 낯설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악마의 음료라고까지 했었다-

커피를 매개체로 그렸다는 점이, 3자의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 본 느낌이랄까, 아무튼 묘한 기분이 들어서 새로웠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커피를 놓고 커피는 이것이네 커피는 저것이네라며 찬양하고 사색하기 바쁘지만

나에겐 커피는 그냥 커피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나에게 커피는 [노서아 가비]의 이반과 따냐를 떠올리는 매개체, 바로 그것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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