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이란 단어를 들으면 개인적으로 야구팬인 나는 자연스럽게
지금은 은퇴한 양준혁 선수를 떠 올린다. 나뿐 아니라 많은 야구팬들이
그럴텐데 그 이유는 양준혁 선수를 수식할 때 쓰는 말이 ‘위풍당당’이었기
때문이다 (‘양신’은 수식어라기 보다는 별명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 책을 발견했을 때 양준혁 선수나 야구 얘기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위풍당당한 사나이의 얘기가 아닐까-그 소재는 둘 째 치고라도-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했던 만큼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이 책의 핵심 줄거리는 생각보다 꽤나 단순하다.
사람의 손길이 채 닿지 않는 어느 강가 마을,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그 조용한 곳이 이야기의 무대다.
사별한 남편에게 한 푼의 재산도 물려 받지 못하고 시댁 식구들로부터 외면 당했지만 교감을 통해
식물의 생명을 풍성하게 만드는 여자, 소희.
어린 시절 풍족하게 자랐지만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친척들에게 전 재산을 빼앗겨버린 영필.
의붓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세미와
그런 누나를 끔찍이 위하고 보호하지만 지적 능력이 낮은 동생 준호.
남편으로부터 끊임없는 폭행과 성적 가학을 받아 탈출한 이령.
그리고 언제부터 이 마을에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사람들을 품고 마을에 함께 살며 대장역할을 하는 여산.
모두 인생에서 최소한 한 가지 이상씩 상처를 받고 어쩌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패한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모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어느 날 조폭 일당이 침입하게 된다. 고개를 넘어야 할 정도로 먼 마을에 다녀오는 세미를 우연히 발견한
조폭 일당 중 세미를 겁탈하려다 준호에 의해 부상당한 행동대장의 복수를 하고자 접근하기조차 힘든 마을에 침입하지만
친 가족 이상의 끈끈함으로 연결된 마을 사람들의 지략에 의해 결국 물러선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그런데 이 단순한 줄거리에서 작가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사실 소설의 진짜 매력은 이런 데 있지 않나 싶다. 작품을 읽고 그 행간에 담긴 작가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래서 작가와 작품에 한 발짝 더 다가서서 궁극적으로는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힌트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이 시대의 주류가 아니라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주류, 그것도 그냥 비주류가 아닌 어쩌면 실패한 인생들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에 모여 사는 소외된 삶.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가 봐도 당체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조직폭력배를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숨지 마라, 위축되지 마라, 사람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당당하게 살아 가자라는 내용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제목도 ‘위풍당당’이 아닐까.
사실 상처받고 실패한 인생이 다시 일어서기란 현재의 대한민국 구조에서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기득권자들이 자신들만의 성벽을 굳건하게 하고 철저히 자기들만을 위해 나라를 움직이고
또 대다수 국민들은 거기에 부화뇌동하고 그러다 보니 실패한 사람을 보듬고 끌어 안아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게 해 줄 수 있는 인식과 문화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많이 아쉬운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언제나 당당하게, 내야 땅볼을 치고도 1루로 전력질주를 해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위풍당당하게 살아야
긴 시간이 흐른 뒤에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성석제라는 작가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부담 없이 뽐내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이 작품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하루키가 언제부턴가 클래식과 예술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소설에 담아냄으로써 감성이 아닌 현학을 뽐내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하루키로부터 멀어지게 된 사람이 늘어 났는데 성석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지식이나 현학이 아닌 감성을 더 풍부하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라고 조용히 혼자 생각해 본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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