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성근 전 SK감독이 승승장구라는 토크쇼에 나왔던 방송을 케이블 TV에서 재방송으로 시청하였습니다. 작년 시즌 우승 이후에 출연하신 것 같았는데요. 4년간 SK 와이번스 감독을 맡으면서 3회 우승에 1회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으면서도 올 시즌 중 구단과의 마찰로 해임되셨습니다. 방송에도 나왔지만 이미 11회 해임 경력이 있어서였는지 큰 부담은 안 가지는 것 같은 뉴스 기사들이 계속 보도되기도 했었지요.
방송을 보면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그 분이 갖고 계신 리더로써 그리고 감독으로써의 철학이었습니다. 즉 리더로써 조직 운영과 감독으로써 선수를 대하는 철학에 관한 얘기였는데, ‘감독님 야구는 재미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얘기하셨죠.
‘어떤 것이 재미있는 야구냐. 리더는 과정이 아닌 결과로 얘기해야 한다(이기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뜻 같음). 그렇지 않으면 조직의 아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로 선수들 연봉도 올려줘야 한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하는 그의 ‘이기는 야구’ 밑바닥에는 선수들의 연봉, 즉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었던 겁니다. 내가 조금 힘들어도 나한테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리더를 조직원들은 따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그는 또 얘기합니다.
‘감독은 아버지다. 그래서 엄하게 해야 한다. 왜냐면 자식이니까 성적이 나쁘다고 버릴 수가 없어서 좋은 성적을 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이런 의미였습니다)
실제로 김성근 전 감독은 선수들이 잘 못하는 부분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잘 하는 부분을 극대화하여 꼭 필요한 시점에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즉 선수 개개인의 활용도를 높여주는 것이지요. 이를 테면 타격이 약한 김연훈 선수가 3루수와 유격수 백업 수비를 보는 것이나 나이가 많았던 가득염 선수를 왼손타자를 위한 원 포인트 구원투수로 항상 기용했던 점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내 치거나 타격이 약하다고 내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런 부분은 선수 한 명 한 명을 잘 파악하지 않으면 정말로 힘든 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는 선수들의 계약 옵션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는데요 쉽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김성근 전 감독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위기가 닥치면 5회 이전이라도 선발 투수를 내립니다. 투수를 바꿈으로써 분위기 전환을 유도하고 승리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결과적으로 그런 승리가 연속되면 우승과 함께 전체적인 선수들의 연봉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대부분 옵션 계약을 갖고 있는데 유명 선수 그리고 외국인 선수일수록 옵션이 다양합니다. 이를테면 김광현 선수는 1승마다 얼마의 금액을 더 지급한다라는 식이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예입니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것처럼 위기 상황이라고 5회 이전에 김광현 선수를 내리면 1승을 챙길 기회가 사라지게 되지요.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불펜 투수로 나서서 1승을 챙길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SK투수들이 선발과 불펜 그리고 마무리를 오가는 선수들이 유독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승리를 통한 전체적인 연봉 상승은 물론 선수들의 개인적인 옵션까지 해결해주는 리더를 어떤 조직원이 따르지 않을까요. 특히 프로감독으로서 사비를 털어 선수들 밥을 사 먹였던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시절의 얘기는 그가 얼마나 선수들을 자식처럼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2002년 엘지 트윈스 감독 대행을 맡아 준우승까지 차지한 후 팽 당했을 때 그 동안의 제자들이 환갑잔치를 해 드린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 되었지요.
자칫 오해하면 '나로 하여금 돈을 많이 벌게 해줬으니까 좋아한다'라고 선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달될 수도 있을 듯 한데요, 그런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선수를 버리지 않고 자식처럼 생각하기에 성적이 날 수 있도록 그리고 성적을 바탕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김성근 전 감독의 야구를 보고 그 분의 철학을 듣고서 내린 개인적인 결론, 즉 김성근이 대한민국 야구판에 ‘선물’한 유산은 ‘이름 값으로 야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저는 조동화 선수가 1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지 몰랐습니다. 늘 백업 선수 같은 느낌을 주었으니까요. 노장 최동수 선수와 이호준 선수가 4번 타자 자리를 지킬지도 몰랐고요. 이진영 선수가 아마 거의 최초로 외야수와 1루수를 동시에 소화했었고 역시 국내 최초 20-20클럽 가입자인 박재홍 선수도 수비 강화를 할 시점이면 벤치로 물러나고, 기아에서 다듬어지지 않았던 전병두 선수가 투수진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김강민-박재상-박정권 같은 선수들이 국가 대표급 기량으로 성장할 줄도 몰랐습니다.
정리하면 이름 값보다는 이기는 야구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선수들 스스로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를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 보면 더 많은 연봉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되는 결과물일테고요.
그래서일까요.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 밑에서 성장한 선수들은 모두 그를 그리워합니다. 양준혁 SBS 해설 위원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연구하는 사람이 김성근 감독이었으며 (첫 번째는 자기 자신) 그 분의 극한 훈련엔 키울만한 선수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얘기를 정명원 넥센 히어로즈 코치가 얘기했었습니다.
김성근 전 감독이 시즌 중 사퇴했을 때 올해 SK 와이번스의 최종 성적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꽤 많았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동안 ‘김성근=SK’라는 공식이 머리에 주입이 되어 있었고, 선수들도 팬들도 코치진도 김성근 감독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달리 선수들은 이기는 방법에 대한 각자의 역할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경험은 포스트 시즌에서 더욱 빛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기고 우승한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 하고요.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김성근 전 감독이 SK 선수단에게 남긴 진짜 유산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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