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었지 ,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로 시작되는 임지훈의 '회상'이 아니었다해도 이 나무는-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뭇잎은-길을 걷는 나에게 그 존재감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수 없이 많은 나무들 중 하나, 그리고 그 나무에 매달려 생명을 이어가는 나뭇잎 중 하나의 존재감이었을 뿐이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길을 걷는 내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특히 앙상한 나뭇가지에 일렬로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저 나뭇잎들은 '하트 나무'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존재감, 그것이었다.
어떻게 나뭇잎들이 하나같이 하트 모양을 할 수 있을까.
그래, 어쩌면 정답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최대 과제이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면서도 하지 못하면 안달나는 바로 그 것, 사랑말이다.
그런데 가만 보자. 대체 사랑을 해 본적이, 연애를 해 본적이 자그만치 언제던가.
누가 묻는다.
"최근에 연애해 본 적이 언제세요?"
굳이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꼽아본다.
누가 또 묻는다.
"왜 그렇게 오래 사랑을 쉬셨어요?"
사랑을 쉬다니. 사랑이 무슨 업무나 돈 벌이를 위한 수단이 아닐진데 쉰다는 표현이 적절키나 한가하고 반문하려다 딱히 대신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넘어간다. 그래, 대체 왜 그렇게 사랑을 오래 쉬었을까. 말랑말랑한 연애세포 다 죽고, 입에 발린 칭찬이나 훌륭한 작업 멘트들 다 잊어버려 그 누구를 만나도 시큰둥해질정도로 사랑을 왜 쉬었을까.
사랑은 잃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지 못해서 흐릿해지는 것이라 했다.
로미오의 첫 사랑은 줄리엣이 아니라 로잘리안이라는 것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해서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굴러 떨어지면 다시 밀어 올려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시지푸스의 비극처럼, 우리는 상처를 받고, 생채기가 나고, 그래서 가슴이 아플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길 바란다. 아무도 로잘리안의 입장에서 사랑을 얘기하지 않은 채로.
난 그런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기억되지 못해서 흐릿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지푸스의 비극 속에서 로잘리안이 되는 것, 누군가에게서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것. 그것 말이다.
아니 어쩌면 약자가 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연연하게 되고, 그리워하게 되고, 그렇게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다가 결국은 잊혀지게 되는 그런 약자가 되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시선에 들어와 가슴에 자리 잡은 이 하트 모양의 나뭇잎들이 나를 깨웠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평범해보여 그냥 지나쳐버리는 존재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아주 예쁜 '사랑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적어도 나는 이 나무를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테니까.
그래, 어쩌면 더 늦기 전에 필요한 것은, 아무리 봐도 정답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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