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던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놀래켜서가 아니라 갑자기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때문이다.
'후두둑'
그래, 후두둑이다.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어휘력도 괜찮다고, 작문 실력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후두둑'외에 표현할 길이 없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언가에 몰입하다가 갑작스레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면 항상 눈 앞은 뿌옇다.
사실 눈 앞이 뿌연 것이 아니라 유리창이 빗방울에 젖어 그런 것일진데, 무언가를 확실히 보려는지 이내 창가로 다가가 멍하니 창 밖을 내려다 본다.
여기서 '내려다 본다'라는 표현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나 내가 일하고 있는 공간이 어느정도 높이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의미한다.
뭐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가까이 가서 본다고 뿌연 것이 갑자기 맑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치 가슴에 무언가가 턱하니 올려져 있는 것처럼 답답함을 어딘가에 호소하고 싶다.
그러다가 평소에는 빗줄기가 들이칠까봐 쉽게 열지 못하던 창문을 한 번 '용감하게' 열어본다.
가슴이 조금은 뚫리는 느낌. 뿌연 것이 제거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눈 앞의 한 꺼풀이 벗겨져 버린 느낌.
그래, 그랬었나보다.
너는 나에게 창문을 적셔 뿌옇게 만들어버린 그런 비였다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비가 내리는 것을 싫어하나 보다.
웃기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가 김건모의 빨간우산인데 말이다.
유리창을 쓱쓱 닦아버리면 한 없이 주룩주룩 내리던 너도 같이 닦일까 시도해보지만 비가 그치기전엔 아무리 닦아봐야
다시 유리창이 젖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내 닦아버리기를 포기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그래, 억지로 지운다고 지워질까. 그냥 잊혀지면 잊혀지는대로 기억나면 기억나는대로 사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얼마 전 아주 오래전에 썼던 일기장에 써 놓은 글을 발견했다.
"그것은 설레임이다.
가슴 깊이 응어리져 있는
터질듯한 갈증은
목줄기를 타고 올라
두 뺨위로 흐르는 눈물로 표출된다.
코 끝이 시큰해오고
다시는 뒤볼아 볼 수 없다.
하지만
결국 그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비-
그것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예전이나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이나 너는 나에게 그렇게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을 주는 비인가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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