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혹은 요시모토 바나나.
그들처럼 유명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이 나에겐 그 이름만큼 익숙하진 않았다. 하루키에 흠뻑 빠졌었고 뒤이어 공중 그네의 오쿠다 히데오에 익숙해져 혹여나 실망할까봐 ‘혹시나가 역시나’가 될까봐 그들의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많았다.
최근 한국에서 일본 소설 열풍이 분다는데 나는 그 열풍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아르헨티나 할머니’. 마음만 먹으면 30분~1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아주 얇은 양장본으로 만나게 된 이 책은 부담 없이, 정말로 부담 없이 바나나란 유명한 작가와의 조우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일반적인 상식을 살짝 빗겨가면서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전형적인 일본 단편 소설의 재미를 가고 있으면서도 하루키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어서 나름 구성의 재미를 안겨 주고 있다.
아내를 잃은 중년의 조각가가 모두가 꺼려하는 혼자 사는 아줌마의 집에 동거하면서 죽은 아내의 묘에 놓을 비석을 만들고, 그런 아버지를 보러 그 집에 드나든다는 얘기 자체가 사실 현실적이거나 정상적이지는 않은 얘기니까.
사실 하루키냐 류 혹은 바나나냐 하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마치 최인호냐 황석영이냐 또는 이문열이냐 하는 비생산적인 얘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루키를 좋아했던 것은 언어를, 문장을 시각화해서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다. 류나 바나나가 그 느낌을, 그 재미를 채워준다고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쉽게 그들을 선택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마치 이문열의 선 굵음이 황석영의 섬세함이 주는 느낌과 다르듯이.
어쨌든 절반의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음 번에 그들을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아니라 바나나, 그녀다. 아직 류는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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