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역사물은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역사물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실제 있었던 역사를 바탕으로 창조적 아이디어를 더하여 탄생한 결과물 그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 나라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친쪽발 반민족 사관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주류 사학계가 주장하는 것이며
우리가 배우거나 알고 있는 역사가 대부분 그런 역사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그들은 현재의 권력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겨울 우리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더 문제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직도 그런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컨텐츠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컨텐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명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만드는 이의 상상력이 결합되기 마련인데 술자리 같은 곳에서 들려 오는 얘기를 보면 ‘TV 드라마에서 그러던데’,
‘영화에서 보니까 이렇게 나오던데’라며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는데 뭐 이 부분은 점차 나아지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실 [관상]이라는 영화가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관상’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나 액션물이 아니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이 영화가 조선 초기 ‘김종서 vs 수양대군 (세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것을 접하고는 생각이 살짝 바뀌었는데
바로 몇 년 전 읽었던 소설 [왕을 만든 여자]를 꽤나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http://blog.daum.net/leggie/17187382 참고).
세종대왕 시절부터 4군 6진 개척 등 (이것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혁혁한 공을 세운 김종서 장군은 세종대왕 이후인 문종과 단종 시절에도 신임을 받아 국가의 최고 권력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인데
바로 여기서 오해가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종의 동생이자 단종의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은 단종이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권력을 쥐고 있던 김종서가 단종을 쥐락펴락하며 정사를 능욕할 수 있다고 의심하며
김종서는 수양대군의 그런 의심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행동들이 오히려 어린 조카를 왕위에서 밀어내고
왕권을 차지하려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손에 땀을 쥐는 (?) 대결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 [관상]은 바로 이 두 사람의 권력 싸움의 한 복판에 있게 된 한 관상 전문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관상이란 그 사람의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생김새로 성격과 취향 등등을 알 수 있고 그 것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운세, 즉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일종의 통계학인 셈이지요.
이를테면 갈매기 눈썹은 어떻다더라, 미간이 좁거나 인중이 길면 어떻다더라, 입술 색이 짙으면 어떻다더라 하는
과거의 통계를 바탕으로 너는 이러이러하게 생겼으니 이런 운명일 것이고 이런 것을 조심해라라고 알려주는 것이지요.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김종서의 측근으로 관상을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데 일조했던 내경 (송강호)이 단종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의 반역 음모를 깨닫게 하기 위해
단종이 보던 관상 서적에 나와 있는 역모의 관상처럼 수양대군의 얼굴에 점 세 개를 만드는 부분을 보면
관상이란 것이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이런 관상이 역모를 일으켰으니 현재 이러 관상을 갖고 있는 수양대군도 역모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운명이란 관상대로 되는 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통계라는 것은 오차가 있을 수 있고 예외라는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100%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 사람의 운명이란 완벽하게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통계를 바탕으로 한 관상, 관상을 바탕으로 예측할 수 있는 운명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흐르는 시대의 흐름이라든지,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며 또한 어떤 운세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느냐도 상당히 중요할 것입니다.
영화 앞부분에서도 어떤 젊은 부녀자가 죽게 되고 그 살인범을 관상으로 잡는 과정에서 내경이 얘기하기를
죽은 부녀자의 관상은 요절하거나 일찍 죽을 상이 아님에도 탐욕에 찌든 관상을 가진 남편을 만나 죽게 된 것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결국 그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그 여자 또는 그 여자 부모의 선택이 (조선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모의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네요)
여자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는 겁니다.
김종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초한지를 보면 유방이 중원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세우자 장자방은 스스로 관리에서 물러나 초야에 묻혀 사는 길을 선택하는 데요,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면 너도나도 개국공신이라고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들고 그런 ‘이익배분’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반역을 도모할 수가 있기 때문에
유방은 한나라 건립 후 곧바로 개국공신들을 차례로 죽여버립니다.
장자방은 그런 일들을 미리 예측하여 관직을 버린 것이지요.
김종서도 너무 권력의 최측근에 강력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 수양대군과의 대립을 불러온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수록 스스로 한발 물러서기도 하고 수양대군과의 친밀감을 높이기도 하면서 오해를 없애야 하는데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권력을 너무 오래 그리고 강력하게 쥐고 있었기 때문에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즉 이리 됐던 저리 됐던 본인의 선택이 결과를 만들어 버린 것이란 얘기입니다.
혹자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라며 강한 운명론을 얘기하곤 하는데 저도 완전히 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자영업을 시작한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하고 연예계에 갓 데뷔한 신인들도 남들 못지 않게 열심히 합니다만
대박난 가게는 몇 안 되고 많은 수의 신인 연예인들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 운명론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되는 놈은 어떻게 해도 되고 안 되는 놈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거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옆에 두느냐, 주위에 도와 줄 사람이 누구 있느냐,
자영업의 경우는 위치와 메뉴는 무엇으로 할 것이냐와 하는 것들이 많은 작용을 하는데
이런 것들은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인간 관계를 맺어 왔으며 어떤 선택을 하기까지의 고민의 깊이와 시간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으니
결국엔 다 본인이 살아온 결과물이 바로 본인의 운세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얘기가 옆으로 많이 흘렀네요.
영화적으로 [관상]은 꽤나 재미있습니다.
짜임새가 탄탄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큰 억지스러움이 없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을 하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송강호와 조정석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기 호흡이 개인적으로는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송강호와 조정석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코믹하게) 그려진 부분이나 마지막에 내경의 아들인 진영 (이종석)이 죽는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긴 내경의 오열 장면 등을 조금 아쉽기는 했었습니다.
특히나 김혜수가 역할을 맡은 ‘연홍’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게 됐는데, [타짜]에서도 그렇고 [관상]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김혜수라는 배우가 무언가 2% 어색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목소리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또 김혜수를 대체할 만한 배우를 떠올려보자니 딱히 떠오르지는 않고요.
다만 최근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김성령 씨도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드는데 역시나 확신은 할 수 없네요.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한명회의 비중입니다.
수양대군의 최측근으로 수양대군이 스스로 자신의 ‘장자방’이라고 할 정도로
김종서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왕위에 오르는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 사람인데
아무래도 관상쟁이 내경을 부각시키느라 영화에서의 비중이 미약하게 다뤄졌는데
어차피 영화라는 것이 상상력이 결합된 창조물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명회가 관상을 기가 막히게 보는 인물이라는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긴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생과 운명이라는 것에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이나 영화 등이 존재하는 이유가 스트레스도 풀고 시간도 때우고 하는 기능도 있지만
이처럼 뭔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도 있지 않을까요?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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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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