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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읽어주는 남자: 낫 아웃!

[KBO 프로야구] 역대 최고 포수 열전! 심재원

by Robin-Kim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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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수 편 보러 가기

 

사실 선수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포수로 누굴 꼽느냐고 물어보면 단연 심재원 선수를 꼽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심재원 선수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투수들이 그 대상이겠지요.

 

타자의 의표를 찌르는 볼 배합을 통한 투수 리드, 도루 저지 능력 등 포수로써 가져야 할 자질을 모두 갖춘 완벽한 포수라고까지 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선수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한 심재원 선수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지고 또 뒤져도 여기저기 수소문을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이 그 분의 기록 혹은 이야기인데요,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비형 포수라는 수식어 때문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서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래도 수비형 포수는 공격형 포수에 비해 그 존재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안방을 지키는 이른바 말 그대로 안방마님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인지도 면에서나 인기도 면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자료나마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심재원 포수에 대한 얘기를 모아봤습니다.

 

 

부산고와 성균관대를 나온 심재원 선수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의 안방을 책임진 대표적인 수비형 포수입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일본을 5-2로 물리칠 때의 안방도 심재원 선수가 지키고 있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진 않았지만 성실함을 바탕으로 1983년 고향 팀인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짠돌이 구단으로 유명한 롯데로부터 특급 대우인 4,400만원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가 인정받는 포수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는 85년 3월 MBC청룡으로 이적하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한문연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1990년 LG트윈스 우승 당시 신인왕을 차지했던 김동수 선수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1991년을 끝으로LG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1953년생이니까 당시 우리 나이로 39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그가 수비형 포수란 별명을 얻은 것은 그의 타격이 약한 것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한데요, 프로통산 9년간 평균타율이 0.213이며 2할 5푼을 넘긴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타격을 넘어선 포수로써의 그의 위치는 실로 대단했던 것이 살아있는 전설이자 국보급 투수라는 별명을 가진 선동렬 현 기아타이거즈 감독의 제구력을 완성시켜준 장본인이 바로 심재원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심재원 포수는 후배였던 선동렬 선수에 공을 던지게 하고는 원하는 위치에 공이 오지 않으면 아예 받지 않고 공을 뒤로 흘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동렬 선수가 열심히 뛰어가서 그 공을 다시 주어 와서 던지고, 빠지면 다시 주워와서 던지는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고 하는데요, 선동렬 현 감독도 그 당시 그런 훈련으로 인해‘컨트롤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하니 심재원 선수 없는 선동렬 감독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은퇴 이후 LG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심재원 선수는 1994년 5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좀 더 많은 것을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갔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가끔씩 들곤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화려함 보다는 성실함과 꾸준함을 바탕으로 아직까지 역대 최고의 포수로 평가 받는 심재원 선수. 그의 뒤를 이을 최고의 포수는 과연 누구일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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