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나라 극장가에 북한을 소재로 한 첩보 영화가 많이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공동 경비 구역 JSA]나 [실미도] 혹은 [웰컴투 동막골]처럼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분단에 의한 남북한의 갈등이 주를 이뤘다면 [베를린]으로 촉발된 최근의 북한 소재 영화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등과 같이 ‘첩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최근 개봉한 공유 주연의 [용의자]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특징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부의 권력 다툼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헐리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특수성, 그러니까 세계 각지의 정보를 모아 자국에게 유리한 정세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들인
FBI와 CIA 그리고 NSA 등이 있기 첩보 영화를 만들기 딱 좋은 곳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특히나 백악관과 미국 대통령은 헐리웃 영화를 보면 언제나 테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저래서 미국 대통령 해 먹고 살겠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어찌됐든 그 유명한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007 시리즈] 등이 나오기 쉽고 나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미국 못지 않게 그런 첩보 영화를 만들 소재가 풍부한 곳이 다름 아닌 우리 나라입니다.
북한과 마주선 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존재하는 우리 나라는 서로 간의 경쟁에서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 으르렁대고 있지만
뒤로는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주고 받기도 하고 또 정치적인 협조를 하기도 하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관계입니다.
그런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특수성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는 첩보 소재가 충분히 발달할 수 있었음에도 그 동안 충무로가
그런 것들을 외면했던 데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가장 컸을 것이고 그런 소재를 갖고 영화를 기획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아서였다라는 생각입니다.
짜임새 있고 탄탄한 구조, 몰입도 있는 캐릭터 설정, 추격전과 격투와 같은 액션 등을 기획하고 표현해 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젊은 영화 감독들이 외국의 다양한 첩보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얻고 또 촬영 기술도 상당히 발전하여
이제는 우리도 앞서 얘기한 헐리웃의 첩보 영화 수준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용의자]가 아직까지 그 방점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먼저 기획력 부분에서 보면 이 영화는 등장인물끼리 얽히고 설킨 상당히 탄탄한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 지동철 (공유)는 북한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과정을 마친 최정예 요원인데 외국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정권이 김정은으로 바뀌면서
북한에 남아 있던 가족이 살해 됩니다. 그리고 그 살해범 리광조 (김성균)가 남한으로 남파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죽이기 위해
귀순의 형식을 빌어 넘어와 대리운전 기사를 합니다.
그러던 중 역시 탈북자 출신으로 큰 기업을 일군 해주그룹 박건호 (송재호) 회장을 알게 되는데 사실 초반부에 등장하고는 죽음으로 영화에서 제외된
박건호는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박건호가 북한에게 넘기려고 한 전혀 새로운 기술을 가로채 외국에 팔아 큰 돈을 벌려고 한 국정원 차장 김석호 (조성하)와
해주그룹을 가로채고 싶은 박건호 회장의 심복 송전무 (박지일)가 공모해 박건호를 죽이지만
그 새로운 기술 공식이 새겨진 박건호의 안경을 지동철이 갖고 사라지면서 두 사람은 그 범인으로 지동철을 지목하여
대외적으로 날리고 그를 쫓는데 혈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박건호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새로운 기술 공식이 없다면 이 영화의 핵심이자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인 추격전과
강렬한 액션이 등장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냥 복수를 위해 남한으로 넘어 온 북한 공작원이라는 평범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
박건호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에서 간첩 잡는 데는 1인자라고 불리는 민세훈 (박휘순) 대령과 지동철의 과거의 악연, 김석호와 민세훈과의 관계,
김석호의 비리를 캐내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여기자 최경희 (유다인) 등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이 영화가 단순히 액션만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박휘순이 연기한 민세훈이라는 캐릭터인데요,
전형적인 마초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남의 말은 상사의 말도 잘 듣지 않고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표현할 필요가 있었나도 싶고 박휘순이란 배우에게 잘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박휘순이 그 동안 [10억]이나 [세븐 데이즈] 등에서 보여준 거친 모습은 괜찮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한 단계 더 들어간 ‘완전한 마초’ 연기를 보여주려 하는데 억지스럽게 포장된 캐릭터 같아
어깨와 눈에 들어간 힘을 조금만 더 뺐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많이 아쉬웠습니다.
액션 측면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양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줄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입니다.
러시아와 필리핀의 특수부대가 생존을 위해 연마한다는 무술인 ‘시스테마’와 ‘칼리아르니스’가 주로 사용되며 보여주는 격한 싸움은
헨드헬드 기법을 통한 카메라 촬영과 어우러져 그 화려함에 숨이 막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합니다.
소지섭 주연의 영화 [회사원]에서 등장한 러시아 무술인 ‘시스테마’는 주로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치면서 순간적인 힘을 이용하여 탄력적으로 공격을 하는
무술이고,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에서 선보인 필리핀 무술인 ‘칼리아르니스’는 긴 무기부터 시작하여 무기가 점점 짧아져 마지막 맨손까지의 순서로
수련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1
케이블 TV 프로그램 중 ‘주먹이 운다’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데 일반인들 중 실제 UFC 선수들과의 대련을 통과한 사람끼리
실제 8각의 링에서 격투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수색대나 해병대 혹은 특수부대 출신이 종종 도전을 하지만 UFC 선수들에게 무참하게 패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선수한테는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경기의 모든 규칙 없이 진짜로 싸운다면 실제 특수부대에서 무술을 연마한 사람들을
이길 사람은 없다는 얘기를 군 장교 출신 후배에게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연마하는 것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소리 없이 다가가 뒤에서 적의 목을 따거나 격투 중 실제 적의 목숨을 끊어 놓는 무술이라
UFC와 같은 ‘격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그런 무술이 복합적이 사용되었으니
[용의자]의 격투 장면은 말 그대로 ‘액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홍콩영화 '가자왕' 출연 이후 활발한 활동으로 무술의 본토 홍콩에서 마스터(사부)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 무술 연출계의 대부라고 불리는 원진감독이 청량리 역에서 공유와 결투하는 SA1 요원으로,
영화 [평양성], [더 파이브]의 무술 연출을 맡았던 최태환 무술감독이 극 초반 박회장의 살해 현장에서 지동철과 격투를 벌이는
괴한의 사내 역할로 직접 출연했고, 김석호 실장의 곁을 지키는 요원이자 영화 후반 국정원 내부에서 지동철을 위협하는 인물 역시
무술 실력자로 유명한 배우 원풍연이 출연했으니 대한민국 영화의 ‘격투의 격이 올라갔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 합니다.
거기에 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준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화려한 총격장면들까지 더하니
보는 관객은 숨쉴 틈이 액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2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속편이 나올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지막 장면을 보니 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딸이 팔려가 노예처럼 부려지는 곳으로 직접 찾아간 지동철이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막이 내렸기 때문에
그 부분부터 연결하여 속편을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북한을 이용한 첩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 하기 때문에 기획만 잘된다면
우리 나라에서도 첩보 시리즈 물이 영화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든 생각은 이제 우리 나라 영화 찍는 기술도 외국, 특히 헐리웃하고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순 제작비 72억 원 정도로 이런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 제작비를 좀 더 들인다면 더 화려하고 더 완성도 높은 첩보 액션 영화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 영화도 이제 꽤나 다양성을 갖추게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입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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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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