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 사람들 중에 ‘나를 찾고 싶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라는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삶에 지치고 어느 순간 뒤돌아 보니
내가 온 길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와 같은 삶에 대한 번민이 들 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오랜 기간 동안 여행을 하지 못한다.
조금만 길게 여행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여행이 길어지면 그 것은 그 때부터 여행이 아닌 생활이 된다.
어떤 신기한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과 같은 낭만보다는 당장 먹는 것과 잠잘 곳을 걱정해야 하며
내가 가진 돈이 얼만큼 있으니 오늘은 이만큼만 써야 돼와 같은 생각이 먼저 앞서는 생활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장기 여행은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은 특정한 이유를 가진 사람이 하지 못하는, 정말 여행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가 힘들다.
단기간 혹은 길어야 한 두 달 정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여행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현재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내가 갈 곳 혹은 가고 싶은 곳을 확인한 후 어떤 길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극단적으로 얘기했을 때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정답이 없다.
버스를 타고 가든, 걸어서 가든, 기차를 타고 가든, 다른 곳을 들렀다 가든, 에둘러 가든, 혹은 주변의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곳만 가든
그것은 오로지 여행을 하는 사람 스스로의 몫이고 그것이 좋다, 나쁘다라고 제 삼자가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가 택한 여행에 행복해하고 만족해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니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여행을 대신 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
산다는 것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긴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과정에는 정답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구태의연 하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밟아간다 해도 혹은 너무 모험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혀를 찬다고 해도
그 인생을 사는 사람이 그것을 바라고 그것에 행복해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는 그 인생이 정답인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세 얼간이]는 삶이라는 여행을 살아가는 과정에 대해 작가와 감독의 인생관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정답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쉬운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인도 최고의 명문 공과대학 ICE.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 작가가 되기를 열렬하게 원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가 정한 공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ICE에 입학한 파르한.
우체국장이었던 아버지는 전신 마비로 누워 있고, 누나는 지참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고,
어머니의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을 한 몸에 받고 ICE에 입학한 라주.
입학 첫날부터 관습에 도전하며 선배들에게 빅엿을 먹인 자유로운 영혼의 란초.
이렇게 세 사람의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3시간 가까운 영화의 핵심 내용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 좋은 연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꿈인 ICE에서
란초에 의해 인생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래서 파르한은 마침내 아버지를 설득해서 사진 작가가 되고 라주는 집안의 기둥이라는 뿌리 깊이 박힌 걱정과 두려움을 씻어내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좋다. 별 이견도 없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언제나 이어지는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며 언제나 과연 이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것이
언제나 내가 하는 고민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의 문제점은 그런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사실 무시했다는 표현이 맞을지 도외시했다는 표현이 맞을지 혹은 다른 표현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딱히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무시했다는 단어를 썼다.
다른 삶을 원하지만 억지로 ICE에 입학한 사람도 있는 반면 우간다에서 유학 온 ‘차투르’처럼 ICE의 가치를 따라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런 차투르의 가치관도 존중 받아야 한다.
살아가는 과정에는 정답이 없고 본인이 행복하면 그것이 정답이니까.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연봉을 받고 좋은 아내를 만나 근사한 집에서 결혼하는 것이 차투르가 원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차투르의 가치관도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하는데 이 영화는 란초의 가치관과 메시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차투루의 가치관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혹은 옳지 않는 것 등으로 희화화시켜 삶에 대한 가치관을 이분법적으로 전달하려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명예가, 어떤 사람은 돈이, 어떤 사람은 안정적 직장이, 어떤 사람은 외모가, 어떤 사람은 사랑이 그 사람에게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다.
누구도 그 사람의 가치관에 손가락질 할 권한은 없다.
문제라면 그 어던 특정 가치관이 사회 구성원 전체가 원하는 것이 되면 모두가 그것을 쫓으며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보다 긍정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란초의 가치관도 차투르의 가치관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모두 의미가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었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니까 하나의 가치관을 이야기하기 위해 무리하게 이분법적인 구성이 아쉽다라는 생각이다.
영화 자체로는 꽤나 훌륭하다라고 생각한다.
인도 영화 특유의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뮤지컬 형태의 꼭지들도 너무 자주 나오지 않아서 좋았고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주말이면 인도 영화를 지속적으로 틀어주는 나라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노래와 춤이 너무 많이 나와
보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영화 곳곳에서 보여지는 형형색색의 선명한 색감도 좋았으며,
마지막에 보여지는 아름다운 풍경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전체적으로 유머 코드를 통해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끌어간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괜찮게 본 인도 영화라고 단연코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다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너무나 이분법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이 아쉽다면 아쉽다고나 할까.
평균적으로 70~8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긴 여행에서 내가 원하고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도 확인해봐야겠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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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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