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스릴러 영화라고 하는 것들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화나 행동들에 의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영화의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반전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긴장감을 극도로 치닫게 하고는 반전이 없으면 좀 허탈해 지거나 허무해 지는 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국내 영화 중 아직까지 최고의 스릴러 영화로 꼽는 것이 [세븐 데이즈]입니다.
박휘순이나 김윤진 같은 연기력을 논할 필요 없는 배우 외에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몰입될 수 밖에 없는 긴장감과
마지막의 극적 반전이 엄지 손가락 두 개를 치켜 들게 만들기 충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폰 부스]라는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 전개도 없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등장인물들의 갈등도 없습니다.
1시간 20분이라는 시간 동안의 대부분이 거리의 공중전화 부스가 차지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된말로 ‘염통을 쫄깃하게’ 해주는 스릴감은 최고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으며 마지막 반전도 굉장하다고 하기에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한 뉴욕의 한복판.
영화의 배경은 아직 정돈이 되지 않는 뉴욕을 보여줍니다.
매춘부가 대낮부터 영업을 하고, 거리에는 잡상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조금은 무서워 보이는 흑인들의 무리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최고로 위험한 도시 중 한 곳’이라던 시절의 뉴욕의 모습입니다.
그 곳을 활보하던 스튜는 정확한 직업은 모르겠으나 공식 영화 안내 페이지를 보면 미디어 에이전트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미디어 에이전트 역시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화 속 스튜의 직업은 잘 나가가는 연예인을
들었다 놓기도 하고 식당도 유명세를 타게 해주기도 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잘 나가는 기획부장 (?)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듯 합니다.
그 방면에서 잔 뼈가 굵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좋은 옷과 좋은 신발로 치장을 하고 사람들을 대충 무시하기 일쑤인 스튜는
매일 오후 같은 시각이 되면 공중전화로 팸이라는 여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결혼반지를 살며시 빼 놓고.
이를 테면 바람을 피는 것인데 휴대 전화를 두 개나 갖고 있는 그가 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는지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어쨌든 팸과의 통화를 마친 후 공중전화 부스를 나서려던 스튜가 마침 공중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본격적인 스릴이 진행됩니다.
스튜가 수화기를 들자 누군가가 수화기 너머에서 얘기합니다.
“왜 사람들은 전화벨이 울리면 누군지도 모르면서 전화를 받는 걸까?”
범인의 얘기대로 스튜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스튜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때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는 바람에 폰부스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러니까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범인이 어느 건물에 숨어서 총으로 스튜를 겨누고 있기 때문이지요.
전화를 끊고 도망칠 경우 즉시 총을 쏴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앞서 얘기한 범인의 얘기는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그리고는 영업을 위해 공중전화를 써야 하는 길거리 매춘부와의 다툼과 덩치 좋은 그녀들의 포주와 실갱이가 벌어지지만
범인이 총으로 보호자를 죽이고 스튜는 다시 공중전화를 혼자 쓸 수 있게 되지만 매춘부들은 스튜가 포주를 죽인 것으로 오해합니다.
이후 경찰이 출동하고 각종 방송국 카메라들이 등장하면서 공중전화를 둘러싼 지역은 마비가 되고 스튜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 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송을 보고 아내와 팸, 스튜의 보조 직원이 현장으로 찾아 오지요.
사실 이 영화가 정확하게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했을 때는
부도덕한 세상에 대한 일침이랄까, 아무튼 건강한 사회 같은 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듯 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한 번도 그 모습은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공중전화를 통한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범인이
스튜의 모든 것이 생중계 되는 상황에서 스튜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바람 피려는 것에 대해 아내에게 솔직해지라는 것과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무시 혹은 하대를 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와 팸 둘 중 한 명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통해서 말이죠.
동시에 화면은 총이 두 사람을 왔다 갔다 하며 조준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덕에 스튜는 전화 부스 밖으로 상체를 내밀어 아내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큰 소리로 독백하듯이 자신이 사람들을 무시했던 일들에 대해 반성합니다.
물론 그 장면 역시 TV로 생중계 되고요.
하지만 경찰은 범인이 스튜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기 전 스튜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던 장소를 찾아 냅니다.
범인이 스튜의 아내에게 스튜가 공중전화를 전화를 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줬던 것이죠.
그리고 경찰이 급습한 곳에는 스스로의 목에 칼을 질러 위독한 상태인 범인이 있었고 스튜와 통화를 했던 기계가 있었습니다.
경찰이 현장을 수습하고 데려 온 범인은 그 사이에 죽었으며 그 범인의 얼굴을 확인한 스튜는 아연실색합니다.
자신이 팸에게 전화를 걸기 직전 공중전화 부스로 찾아 온 피자 배달부였기 때문이지요.
그 때 스튜는 피자 배달부를 굉장히 하대하며 돈 몇 푼 주어 쫓아냈었습니다.
사실 공중전화 부스로 피자를 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자꾸 귀찮게 이것 저것을 따지니 짜증이 날만도 했지요.
어쨌든 그렇게 사건이 해결되고 긴장감에 탈진을 한 스튜가 신경 안정제를 맞고는 정신이 몽롱해 지는 상황에서 이 영화의 극적 반전이 등장합니다.
바로 영화 내내 목소리만 등장했던 진짜 범인이 나타나서 이번은 살려줄 테니 앞으로 착하게 살라고 하며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지요.
즉, 피자 배달부는 범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오로지 감독만 알고 있겠지요.
참고로 영화를 보는 내내 목소리가 익숙했던 범인이 누구였더라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바로 TV 드라마 ‘24’시리즈의 잭 바우어로 유명한 키퍼 서덜랜드입니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치고 받고 하는 큰 이야기 거리 없이도 뉴욕 중심가의 한 모퉁이에 있는
폰 부스만으로 쫄깃한 스릴감을 맛보게 해준 영화 [폰 부스].
그렇고 보면 제작비를 수 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흥행에 실패한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연출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콜린 파렐의 뛰어난 연기도 함께.
살다 보면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어느 날 갑을 관계의 ‘갑’으로 나타날 때가 실제로 있습니다.
저도 경험 했었고요.
그래서 농담처럼 주위 사람들과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니까’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사람은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혹시 또 압니까?
내가 작은 온정을 베풀었던 사람이 어느 날 아주 잘 돼서 나에게 큰 은혜를 갚으러 나타날지.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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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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