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공포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예 무시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잔혹하다거나 공포스럽다거나 하는 영화는 의식적으로 외면하곤 한다.
일종의 트라우마 (?) 때문인데, 어린 시절 극장에서 [미저리 (케시 베이츠 주연)]를 보고 한 동안 밤에 집 밖을 나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 영화가 아닌 스릴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덕에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포 영화들-여고 괴담 시리즈, 착신아리, 링 등-은 당연히 나의 관심사 밖이었다.
그런 나의 공포심을 극복해 준 영화가 몇 년 전 크게 히트했던 [추격자]다.
김윤식과 하정우를 일약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극장에 가긴 갔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간 덕분에
뭘 볼까 하다가 마침 시간이 맞아서였다. 내용도 모른채로.
잔인함과 공포를 넘나드는 영화 내용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볼 만했다.
시선을 끝까지 잡아 끄는 힘이 탁월했고 구조는 탄탄했다.
그리고선 '이 정도면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공모자들]을 보게 되었다.
임창정이 주연이라는 것, 그다지 밝은 얘기가 아니라는 것 외에는 아무 정보도 없이 '한 번은 봐야 되는데'라며 늘 생각하고 있던 터라
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꽤나 잔인함에 놀랐다.
아니 어쩌면 영화는 잔인함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의 소재 자체가 약간 충격적이고 잔인할 뿐 [추격자]에 비하면 영화 자체는 오히려 점잖다고 봐도 될 듯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참 추격자와 닮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의 감정이 개운하다거나 즐겁다거나 하기 보다는 왠지 모를 찝찝함으로 가득하고,
착하고 순한 모습과 잔인한 모습의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도 그렇고,
잔인하고 몹쓸 인간은 끝까지 버텨낸다는 것도 그렇고 많은 부분이 [추격자와 닮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 구조가 비슷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 (스토리)의 가장 원초적인 시작점을 통해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무슨 얘기인지 줄거리를 통해 알아볼까 한다.
중국과의 불법 장기 매매로 생계를 유지했던 영규와 준식 그리고 대웅은 몇 년 전 큰 형님 격인 용철이 바다에 빠져 자살함으로써
자신들의 사건을 무마하자 장기 매매는 그만두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따이공들을 상대로 마약 밀수 하는 일로 바꾼다.
그 중 리더 격인 영규 (임창정)에게는 두 명의 사람이 항상 곁에 맴돈다.
한 명은 부산항 매표소에서 일하는 유리 (조윤희)이고 또 한 명은 빌린 돈을 갚으라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장기 밀매를 하도록 권유하는
후배이자 사채업자 동배 (신승환). 유리는 병원에서 거부하여 아버지가 국내에서는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되자 중국에서 수술을 받을 것을 결심,
동배에게 돈을 빌려 중국으로 떠난다.
마침 동배의 설득으로 인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고는 목돈을 챙겨 이 바닥을 떠날 결심을 한 영규 일행 역시
장기 밀매를 위해 같은 배 (크루즈)에 오른다.
한편, 자동차 보험사 조사원으로 일하는 상호 (최다니엘)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아내인 채희와 함께 중국 여행을 가기 위해 영규와 유리가 탄 배에 함께 오른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지고 지순하게 사랑하는 상호는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채희가 없어지자 온 배를 돌아다니며 채희를 찾아 나서고
그 와중에 유리가 우연히 만나 함께 도와주지만 끝에 찾지 못한다.
영규 일당이 장기 밀매를 위해 납치했기 때문. 결국 채희는 배 안에 있는 사우나에서 장기를 떼이고 죽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죽는다'가 죽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는 네 번의 극적 반전이 나오는데 그 반전들이 서로 물고 물리며 이야기를 보다 짜임새 있고 탄탄하게 끌어가는 요소가 된다.
그 중 첫 번째 반전이 채희가 배 안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 안에서 장기 적출을 위한 수술을 당하기 직전 채희가 몇 년 전 스스로의 목숨으로 자신의 일을 무마시켜줬던
용철의 동생인 것을 알아차린 영규는 준식과 대웅 몰래 그녀를 빼 내고 수술을 마친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수술을 집도한 경재 (오달수) 뿐이다.
두 번째 반전은 준식 (조달환)의 배신.
중국으로 떠나기 전 동배에게 돈으로 매수 당한 준식은 중국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영규와 대웅을 죽일 것을 지시 받고는 그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막내인 대웅을 죽이고는
경재를 찾아가 다시 한 번 살인을 하고 경재와 함께 있으며 아직 살아 있던 채희를 다시 납치,
중국에서 가장 크다는 제일 병원으로 넘겨 끝내 장기가 적출되도록 만든다.
중국 제일 병원은 말 그대로 중국 제일의 장기 밀매 전문 병원인 셈.
유리의 아버지도 수술을 위해 수술로 들어가지만 결국은 장기만 적출되고 그 사실을 안 유리는 그 충격에 자살을 시도한다.
세 번째 반전은, 사실 가장 충격적인데, 지고 지순한 줄 알았던 상호가 사실은 채희의 장기 적출을 동배에게 의뢰한 사람이라는 것.
보험회사 사장으로써 직원으로 위장하여 장기 밀매라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온 상호는
채희의 장기 적출을 위해 일부러 교통 사고를 내서 다리를 못쓰게 하고 결혼까지 해 완벽하게 위장한 것.
배 안에서 채희를 찾기 위해 소동을 피운 것도 사실은 연극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반전은 유리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 당한 것도 병원 원장과 총무과장 등이
중국 제일병원과 연계하여 의도적으로 환자를 넘김으로써 장기 밀매를 도왔던 것.
그것도 모르는 유리는 아버지와 함께 중국 행 크루즈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조금 복잡한가? 그림으로 그려보자.
어떤가 조금 이해가 가는가?
이런 반전들 외에도 무엇보다 이 영화가 탄탄해 보이는 이유는 임창정이라는 농익은 배우와 최다니엘이라는
신선한 배우를 상반된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전면에 배치해서 이런 반전을 포함한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 때문에 추격자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임창정이 맡은 영규라는 인물은 하는 일에 비해 굉장히 여린 심성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더 이상 장기 밀매를 하지 않겠다며 먹던 짜장면 그릇을 던지는 장면이나, 동배에게 자신도 양아치지만 '너는 뼛속까지 생 양아치'라고 하는 장면
그리고 유리를 향한 순애보 등에서처럼 현실과 이상과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고민하는 과정이 결국은 채희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며
심지어 끝내 채희의 장기 적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상호를 총으로 쏘기까지 한다.
그동안 코믹 이미지가 강했던 임창정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듯 하다.
반면 최다니엘이 맡은 상호라는 인물은 착해 보이고 순애보적으로까지 보이는 모습 뒤에 감춰진 진짜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냉혹하기 그지 없어 오히려 겉으로는 멀쩡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감정을 심어 주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찝찝함이 남는 것 같다.
나아가 동배와 영규는 경찰에 잡혀가는 반면 장기 밀매를 사주를 했던 성호는 끝까지 살아 남아
지속적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듯할 정도다.
이처럼 탄탄한 이야기를 가진 [공모자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더욱 놀랍다.
몇 년 전 중국으로 신혼 여행을 갔던 한국인 부부의 얘기인데, 중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택시 기사가 갑자기 외진 곳에서 차를 세우고는 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신랑보고 차를 밀어 달라고 하고선 그대로 도망을 간 것.
신랑은 아내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지만 끝내 아내를 찾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왔고
나중에 아내의 시신이 발견되었지만 웬만한 장기는 이미 모두 적출되었다는 끔찍한 실화.
실제 중국에서는 파룬궁 수련자들이나 여행객을 납치하여 장기를 적출한 후 매매한다는 소문이 횡횡한데,
그 때문인지 중국은 세계에서 장기 이식 수술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하지만 비 위생적이고 낙후한 장비, 낮은 의료기술 때문에 그 성공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생명이 위급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그 확률에 엄청난 돈을 들이고 악순환처럼 그들을 위한(?) 장기 밀매가 성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밀매'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합법보다는 불법이기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장 최악의 인권 유린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중국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범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 여행 시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공모자들의 소재가 된 실화의 범인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추격자]로부터 시작된 이런 류의 영화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미 두 영화에서 관객들은 잔인함과 긴장감,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와 반전 등 모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다려 본다. [식스 센스] 보다 더한 반전을 가진 짜릿한 영화를.
단순한 잔인함 혹은 공포가 아닌 짜릿한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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