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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읽어주는 남자: 낫 아웃!

잊혀진 그 때 그 스타 (5). 한희민- 첫 번째 이야기 (빙그레 이글스, 잠수함 투수)

by Robin-Kim 2024.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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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선 보기 힘든 190cm에 가까운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긴 팔을 이용해서 밑에서 위로 던지는 잠수함 투수.

 

빙그레 이글스 전성기의 중심에 서 있던 투수.

 

한희민 전 선수 얘기입니다 (이하 존칭 생략).

 

아주 빠른 강속구 투수도 아닌데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농락할 때 마다 굉장히 얄미웠던 투수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당시 해태 팬이었던 저는 한희민 선수가 나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어디서 무얼 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그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는 당시 기억을 떠 올릴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농구로 운동을 시작한 한희민은 진학한 중학교에 농구부가 없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된 조금은 독특하게 야구에 발을 내 딛게 됩니다.

 

그리고는 별 활약 없이 선수생활을 보내다 세광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김승성 감독을 만나면서 잠수함 투수로 변신하면서 화려한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당시 충북에 위치한 세광고등학교 야구부는 전국대회에서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당시 충남의 천안북일, 전북의 군산상고, 전남의 광주일고, 경남의 경남고와 부산고, 경북의 대구 상고 등에 비해 충북을 대표하는 야구부가 없던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희민이 2학년이 되던 시절인 1980년, 대구에서 열렸던 대붕기 고교 야구 대회에서 앞에 언급했던 쟁쟁한 학교를 물리치고 세광 고등학교가 우승을 하게 되는데요, 그 돌풍의 중심에 한희민 선수와 1년 선배인 민문식 선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은 준결승전에 선동렬이 등판했던 광주일고를 10이닝 완봉으로 합작하여 격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세광 고등학교는 송진우 선수가 입학하면서 더 유명해 집니다.

 

 

 

이후 성균관대에 진학한 한희민은 덩치 큰 포수 장채근과 배터리가 되면서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기 시작했고, 3학년이던 1984년 대학야구 봄철 연맹전에서 예선리그 4경기와 결승리그 5경기, 총 9경기에 모두 등판하며 첫 우승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는  최우수 선수와 우수투수 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1983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하면서 병역 혜택도 받았습니다.

 

이후 1986년, 제 7구단으로 창단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데, 입단 첫해부터 두 각을 나타냅니다.

 

1986년 9승 13패 평균 자책점 3.13, 12완투, 3완봉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 내는데요, 창단 첫해라서인지 팀이 꼴지를 할 만큼 전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평균자책점 대비 승수가 적게 나온 듯 합니다.

 

당시 빙그레에서 쓸만한 투수는 이상군과 한희민 두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었으니까요. 

 

 

 

1987년 역시 13승 8패 2.36의 평균자책점에 14완투 3완봉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 잘 보면 데뷔해도 그랬지만 완투를 하지 않으면 승을 얻을 수 없었던 팀 사정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만큼 많은 이닝에서 많은 공을 던졌다는 얘기일텐데 얼마 전에 살펴 본 윤학길 전 선수와 마찬가지로 참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1987년에도 팀은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88년부터 팀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1988년 전기리그 2위 후기리그 4위를 차지하며 플레이 오프에 진출한 빙그레 이글스는 한국시리즈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지만 해태 타이거즈에 막혀 준 우승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후 1990년을 제외하고는 1992년까지 매년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1989년과 1991년에는 해태 타이거즈, 1992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에 막혀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돌아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창단 3년차부터 강팀으로 완전히 변한 팀 전력이었는데요, 1987년에 이강돈, 강석천과 같은 타자가 입단했고 1989년에 송진우가 입단했으며, 1990년부터 잠재력이 폭발한 장종훈까지 가세하며 팀 전력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희민 선수가 있었는데요, 아래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992년을 제외하고는 그가 마운드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출처: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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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odus46&logNo=20162090284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newsid=20120802102117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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