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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남자:엔딩 크레딧

고전명작 다시 보기 (7) 냉정과 열정사이- 첫 사랑은 그렇게 기억된다

by Robin-Kim 201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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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가 주겠니?

- 언제?

- 글쎄, 10년쯤 뒤? 약속해 줄래?

- 그래, 약속할게.

 

평생 커피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소설가 발자크는 첫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

 

“First love is a kind of vaccination which saves a man from catching the complaint a second time.”

- 첫 사랑은 다음 사랑에서 불만 (불평)을 갖지 않도록 하는 백신과 같다.

 

아마도 첫 사랑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이유를 반면 교사 삼아 다음 번 사랑을 더 잘할 수 있게 한다는 뜻에서 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사실 굳이 이런 어려운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첫 사랑이란 언제나 아련하게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되새겨 보고 또 되새겨 보게 되는,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추억으로의 시간 여행이 아닐까. 마치 건축학개론의 그것처럼.

 

 

 

어려서부터 혼자 살아서 외로움에 익숙하지만 그 외로움 때문에 무엇이든 혼자 해 나가는 방법을 알게 된 아오이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를

할아버지로 둔,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술과 갤러리에 익숙한 쥰세이.

서로가 대학교 1학년 시절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풋풋하고 아름다운 첫 사랑을 만들어가던 중 헤어지고 만다.

사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흐름상 추청하건데 아마도 아오이가 쥰세이에게 얘기하지 않고

낙태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아름다운 첫 사랑의 쥰세이와 아오이

 

그렇게 치열한 첫 사랑을 마감한 쥰세이는 이태리의 피렌체로 복원 미술 유학을 떠나 그 곳에서 유명한 조반나라는 복원 미술가 밑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아오이는 왜, 어떻게 그 곳으로 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밀라노에서 부자 중국인 남편-더 정확히는 동거 남- 마빈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우연히 들른 친구 타카시로부터 아오이의 소식을 듣게 된 쥰세이는 아오이를 만나러

타가시로부터 건네 받은 아오이의 명함을 들고 밀라노로 건너가 그녀의 행복한 생활을 보고는 본심과는 다르게 화를 낸다

 

- 네가 아직 옛날 일로 괴로워하는 줄 알고

- 괴로워한다고? 다 잊었어. 과거는 다 잊었다고

 

# 오랜 시간 후에 다시 만났지만 감정 조절에 실패한 쥰세이와 아오이

 

첫 사랑은 그렇다. 언제나 후회가 남고 미련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 속에 영원히 남는다.

 

하지만 첫 사랑을 되새기면서 하지 말아야 할 단 한가지가 있다면 상대방도 아직 날 그리워할까, 나와 헤어진 것에 가슴 아파할까라고 묻는 것.

그런 면에서 보면 쥰세이는 사랑에 대해 어설프다. 바보다.

하지만 그런 쥰세이가 어쩌면 첫 사랑에 실패하고 그 실패에 가슴 아파하는 사랑에 어설픈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쥰세이의 재능을 가장 아꼈으면서도 그 재능을 시기했던 조반나는 쥰세이가 거의 복원을 마무리한 작품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나이 많은 이태리 여자가 나이 어린 동양의 남자를 짝사랑하다 택한 비극적인 인생의 결말일지도 모른다.

 

# 피렌체의 골목을 자전거로 달리는 쥰세이

 

아오이와의 만남, 작품의 훼손으로 일본으로의 귀국을 선택했던 쥰세이는 조반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피렌체로 갔다가

다시 한 번 피렌체에서 복원 미술에 도전한다. 한 없이 자신만을 사랑한 메미를 남겨둔 채.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 본 메미를 남겨둔 채.

어쩌면 준세이는 그래서 다시 한 번 바보인지 모른다.

첫 사랑의 추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만을 사랑해 온 메미를 버렸으니까.

첫 사랑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마법 같은 추억 때문에 현재의 사랑을 보살피지 못하는 그런 것.

 

그렇게 다시 한 번 피렌체에 자리 잡은 쥰세이는 아오이와 약속했던 그 날,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날 두오모 성당에 오른다.

연인들의 성지라는 그 곳에. 아오이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하지만 그 약속을 잊지 않았던 아오이와의 재회는 또 한 번의 추억을 남긴다.

동경이 아닌 피렌체에서.

 

-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약속 같은 거 안 했으면 좋았을텐데.

 

첫 사랑을 다시 만나서 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바보 같은 행동 중의 하나는 그 재회를 후회하는 것, 그 후회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런 면에서 쥰세이는 다시 한 번 바보다.

 

# 두오모 성당에서 해후한 쥰세이와 아오이

 

# 해후 한 것에 대해 나즈막한 후회를 고백하는 쥰세이

 

햇살 비치는 쥰세이의 작업실에서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 쥰세이는 전날 아오이가 우연인 듯 데리고 간 거리 음악회가

사실은 미리 준비했었단 것을 알고는 아오이를 붙잡기 위해 기차역으로 내달린다. 밀라노 행 기차를 타려는 아오이를 되돌리러.

 

이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첫 소절만 들어도 알고 있는, 가녀린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하는 ‘The whole nine yard’라는 OST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는 몇 번의 봄이 나온다. 1994년 봄부터 해서 쥰세이와 아오이가 처음 만났던 1990년의 봄까지,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하며 보여주는 다양한 봄 속에서 그들의 첫 사랑 이야기는 시작되고 파경을 맞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봄은 이 영화를 상징하는 계절이며 이 영화의 첫 사랑을 상징하는 계절이다.

물론 영화 상에서는 차가워 보이는 바람이 꽤나 많이 불어서 과연 봄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류의 일본 영화는 러브레터 이후 꽤나 많이 쏟아졌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같은 영화들은 그 내용과 형식이 비슷해서 보다 보면 헷갈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졸립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였다.

유럽 여행 중 영화를 배경으로 한 곳을 방문한다면 그 감동이 더하지 않을까 싶어 영화를 고르다

흔하지 않게 피렌체를 배경으로 했다는 이유로 선택한 영화다.

 

   

 

나쁘지는 않았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회사 내 다양한 부서의 여직원들과 연애를 하려하는 쥰세이의 친구 타카시도,

명랑 쾌활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불안감에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아오이의 친구 다니엘라가 자칫 지루해질 뻔한 이야기를 경쾌하게 해주며,

무엇보다 아오이를 연기한 배우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 진혜림이란 사실도 그런대로 이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재미요소였으니까.

 

하지만 피렌체밀라노라는 장소적 특수성을 제외한다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비슷한 내용과 형식을 가진 많은 일본 영화들 때문인지,

아니면 원작 소설의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의 자품들의 그런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크게 공감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라고 할까.

그냥 비슷한 일본 영화 중 하나 정도라는 감정 외에는 건축학개론의 첫 사랑처럼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보고 싶은

애잔한 마음이 강하게 들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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