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끝이란 시작이 또 다른 말’이라는 하지 않더라도 졸업식은 사람을 설레이게 만든다. 그러면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가 언제더라… 이제는 오래 전 앨범을 들춰봐야만 그 때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때때로 드는 생각이 마이크 타이슨의 핵 주먹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여된 원자폭탄 보다 수십 배,
아니, 그 무게감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강력한 것이 시간이 아닌가 싶다.
헤어져서는 못 살 것 같던 절절한 사랑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 맞이하게 된 쓰라린 실패에 대한 좌절도, 왜 그 때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나 하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후회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지거나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추억이 되어 버리니까.
문득 인터넷이라는 것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오래 전 PC통신의 모 동호회 채팅 방에서 한 젊은 친구
-나보다 2살 정도는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와 나눴던 얘기가 생각이 난다.
채팅 방 제목은 ‘인도로 가는 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인도’와 관련이 있었다-
그 채팅 방에는 그 친구 혼자 있었다. 방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인도에 여행 계획 중이냐고 물었더니
삶의 무게가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고, 지금도 죽고 싶다는 얘기와 함께
인도에 가면 무언가 정신적인 것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비행기 표만 들고 어떻게든 가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카운셀러가 된 상황이었는데, 나도 그 때 어렸기 때문에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난 얘기를 해준 것이 ‘육지의 끝과 바다의 시작’이라는 얘기였다.
‘육지의 끝이 어딘지 아느냐’, ‘바다가 어디서 시작하는지 아느냐’라는 간단한 질문이었는데 사실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 육지고,
육지가 끝나는 곳이 바다가 시작하는 곳이라는 평범한 얘기일 뿐이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한
당신 인생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덧붙이기는 했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채팅 이후 얼마 후 삶의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내용을 보내왔고
난 ‘진심으로’ 좋은 결심을 했다고 축하해줬다. 사실 그 친구가 정말로 자살할까 봐 걱정을 하긴 했었다.
어쩌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얘기를 나눈 상대가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끔찍하면서도 비겁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지금쯤 그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주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아마 아이를 둘 셋쯤 가진 부모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어디선가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그 친구가 아직 그 때 그 일을-나와 채팅을 했던- 기억하고 있을지,
기억하고 있다면 가끔은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 하는 것들이다.
그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 그것이 시간이 지닌 마력이며 영원 불멸할 시간의 힘이니까.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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