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의문이 든다.
젋다는 단어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아니 단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단어가 갖는 의미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연세 오십이신 분이 사십이신 분한테 '젊다'라고 하는 것은
십대의 질풍노도와 이 십대의 열정과 정열로 가득찬 좌충우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리라.
만약 십대의 감성과 이 십대의 열정과 정열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끊임없는 도전을
하는 것이 나이와 상관없이 젊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얼마 전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님은 서거 그 순간까지
젊음을 유지한 분이셨으리라.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젊음은, 이 시대의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된 채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또 다른 도전이라는 시지푸스의 비극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어차피 실패할 것을 알지만, 어차피 안 될 것이란 것을 알지만
단 1%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고 도전하는 '무모함'이 젊음이라면
그런 젊음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리고 그러한 것을 강요하는 이 사회는 얼마나 후안무치한가.
그래, 어쩌면 그래서 젊음은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또 다시 실낱같은 희망을 강요하지만 결국은
궁핍한 현실에 대한 역설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이 젊음이 아닐까.
나의 젊음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젊음'이란 단어의 유통기한이 다 해버린 듯한
그런 시점이 와있지만
긴 시간이 많이 흘러 나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았을때
그통스러웠던 기억이 적었으면 한다.
나의 젊음이 화려한 총천연색 컬러 영화가 되는 반대급부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차라리 고통이 덜한 흑백 영화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그것이 내 작은 희망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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