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덟 살 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무작정 여행을 시작했던 것이. 날씨는 이제 막 더워지려는 5월 중순.
처음 잡았던 코스는 공주, 부여, 창원, 울산이었다.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문화를 알고 싶어서였고 창원은 몇 년 만에 고모 댁을 방문하기 위해서, 울산 역시 몇 년 만에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잡았던 4개 도시 코스 여행이었다.
낙화암을 올라가고 무녕왕릉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백제의 문화를 충분히 느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쉽게 얘기하면 백제 문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런 곳을 여행하는 사람이 쉽게 알기 힘들게끔 우리나라 관광 산업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잡은 두 번째 여행 코스가 관동 팔경 탐방이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정철의 관동별곡에 등장하는 관동 팔경. 그 중 북한에 위치한 두 곳을 제외한 여섯 곳을 강릉의 경포대부터 울진의 망양정까지 버스와 두 다리만으로 여행하면서 ‘아 이래서 관동 팔경이구나’하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 정말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과 경치가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런데 이렇게 꼭 주제를 갖지 않고 떠나도 가보면 아름다운 곳들이 대한민국엔 많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절이다.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절이란 곳은 정치적 이유에 의해 산 속으로 숨어들면서 수려 깊은 경치와 계곡, 그리고 폭포와 함께 좋은 공기까지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곳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물론 누구나 알만한 큰 절이나 유명한 절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 되어 사람을 피해 온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 ‘곱게 늙은 절 집’은 전국에 숨어 있는 크고 작은 절들의 위치와 그 절이 주는 운치를 담담하게 사진들과 함께 담아내고 있어 꽤 마음에 드는 책이다.
공주를 여행할 때 오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들어가 만나본 절의 고요함과 그 고요함 속에서 들었던 풍경 소리. 포항에 갔을 때 찾아간 절에서 만나 본 아름다운 연 꽃과 연 잎이 주는 깨달음은 일반 여행지들과는 또 다른 여행의 재미를 한 껏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우리 주변엔 수 없이 많은 여행 책들로 넘쳐나고 있고 저마다 자기만의 테마로 색깔을 뽐내고 있지만 결국엔 여행지 소개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마치 관광 공사에서 찍어낸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절’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카메라를 둘러 메고 빨리 떠나라고 하는 것 같은 즐거운 책이었다.
물론 종교적인 색안경을 빼고 보았을 때 말이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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