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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진짜 본성을 알고 싶으면 술을 같이 먹거나 고스톱을 같이 쳐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아무래도 정신이 해이해지면서 평소에 감추고 있는 본모습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고, 고스톱을 쳐서 돈을 잃는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기분이 안 좋아지면서 화를 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한계의 상황’에서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본성이며, 그 모습으로 그 사람이 정말로 선한가 악한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다다랐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 (The platform)]이 있습니다.
끝을 알 수 있는 깊이의 독특한 수직 감옥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그 감옥을 [플랫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감옥은 4가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꼭대기 층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층의 숫자가 커진다는 점입니다.
보통의 경우 지구 상의 모든 건물이 지상이 1층이고 올라갈수록 층의 숫자가 커지는데 이 감옥은 반대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한 층에서는 2명이서 함께 지내는데 한 달마다 무작위로 층도 바뀌고 함께 지내는 사람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달에는 20층에서 지내다가 다음 달에는 80층에서 지내게 되며, 그때마다 같이 지내는 사람도 바뀌게 됩니다.
세 번째 특징은 자발적으로 이 감옥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고렝고나 중간에 등장하는 여성 이모구리는 자발적으로 이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모구리는 감옥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상담을 해주는 직업을 갖고 있던 인물인데 오히려 자신이 감옥에 들어온 인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특징은 0층, 그러니까 감옥의 꼭대기인 0층에서부터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탁자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건물의 가운데가 뚫려있기 때문에 그 공간을 활용해서 테이블이 내려오고 각층에서 몇 분간을 멈추게 되는데 그때마다 해당 층의 사람들은 테이블의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특징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테이블이 위에서부터 내려오기 때문에 높은 층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잘 차려진 맛있고 훌륭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깨끗하게 먹기보다는 게걸스럽고 지저분하게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탁자 위에 올라가 음식을 밟으며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래로 내려갈수록 음식의 양은 점점 줄어들게 되며 결국 아래층 사람들 중에는 음식을 아예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높은 층의 사람들이, 아니 모든 층의 사람들이 꼭 필요한 만큼만 깨끗하게 먹으면 더 많은 사람들, 어쩌면 수직 감옥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음식을 즐길 수도 있을 텐데 그 누구도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바로 ‘한정된 시간’과 ‘다음 달이면 몇 층으로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구 잡이로 음식을 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한계의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 (아래층 사람들)을 배려할 여유나 마음가짐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이죠. 내가 한계의 상황에 언제 봉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위층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일까요? 나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목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는 행동을 수단으로 보이는 그들은 정말 악한 사람들일까요?
영화의 주인공 고렝고는 이런 역할, 즉 필요한 만큼만 먹고 탁자를 아래층으로 보내주자고 설득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다른 층의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니 귀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오랜 시간 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하고 있는데 굳이 고렝의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 부분은 집단 혹은 조직 내에서 모두가 나쁜 짓을 해서 그것이 일상화되면, 그 행동이 나쁜 짓이란 걸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바로 ‘악의 평범성’인 것이죠.
‘악의 평범성’이란 독일의 철학 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사용한 말인데, 유대인 대량 학살인 홀로 코스트에 가담했던 아이히만이 2차 대전 이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은 그저 상부에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한 것을 보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은 악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저 상부의 명령을 따른 사람일 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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