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제이컵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었을 때 가졌던 감정은 가족, 특히 아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되어 1급 살인으로 기소되었을 때
그들의 부모는 어떻게 행동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다.
끝없는 믿음으로 아들의 편에 서야 하는가 아니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인지.
그것에 대한 정답은 없으며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시각을 바꿔 굳이 아들이 아닌 딸이나 혹은 엄마나 아빠, 형이나 누나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어떻게 할 수 밖에 없을까요?
영화 [공범]은 그런 영화입니다.
대략 1년에 한 편 정도 영화에 출연하며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는 손예진과 ‘연기의 신’이라고 불리는 김갑수가 주연한 이 영화는
바로 아버지가 범죄자임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직접적인 의문을 던진 영화입니다.
줄거리를 살펴 보면, 정순만 (김갑수)는 자식을 갖고 싶었지만 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와의 사이에 자식이 생기질 않자
산부인과 신생아실의 한 아기를 유괴해서는 이름도 정다은 (손예진)으로 바꾸고는 딸처럼 키웁니다.
그냥 딸처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딸 바보도 이런 딸 바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지중지 키우는데
입버릇처럼 ‘내 심장’으로 부르는가 하면 평일에는 택배 일을 하고 주말에는 발레파킹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돈을 벌어
취업 준비생인 다은을 지원하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98년 일어난 한채진 군 유괴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다룬 영화가 개봉되며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게 되고 마침 다은도 친구들과 함께 그 영화를 보게 되는데
영화에 삽입된 범인의 실제 목소리, 그러니까 범인이 한채진군 부모에게 전화로 얘기한 내용을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는데요,
그 목소리가 자신의 아버지와 똑 같은 것을 넘어 범인의 얘기 중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늘 해주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말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다은은 아버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심준영 (임형준)이란 사람이 나타나 다은에게 출생의 비밀에 대해 얘기해 줄 것처럼
애간장을 태우는가 하면 정순만에게 돈을 뜯어가는 등 행패를 부리는데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정순만을 보며
다은은 무언가 비밀이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심을 쫓아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요.
이 영화는 몇 가지 측면에서 보는 내내 영화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우선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인 정순만은 왜 한채진을 유괴했는가 입니다.
네, 맞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의심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정순만이 유괴범입니다.
혹자는 스릴러 영화의 특성상 범인이 너무 일찍 공개되어 이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화는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영화는 범인을 먼저 밝히고 그가 왜 범인인가를 추적해 가기도 합니다.
선택은 감독이 하고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이지요. 관객이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왜’가 조금 불만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심준영이 1억이 필요하다며 그 돈을 마련해 오지 않으면
다은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리겠다고 정순만을 협박합니다.
정순만은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다은을 잃을 수가 없어서 결국 1억을 위해 유괴를 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대체 심준영은 1억이 왜 필요했는지 왜 하필 1억인지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뜬금없이 1억 필요하니까 갖고 오라 하고 그 1억 때문에 유괴한다는 게 너무 어설픈 설정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보여준 정순만의 성격 대비 범죄의 잔혹함을 따져 봤을 때 범죄에 대한 동기가 굉장히 약하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왜 정순만이 이혼했는지에 대한 얘기도 전혀 없습니다.
이 얘기가 없으니 처남인 심준영이 정순만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협박을 하고 왜 협박을 당하는지에 대한 공감이 없으니 영화의 뼈대 자체가 쉽게 공감이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정순만은 다은의 출생에 관한 자료는 모두 없앴으면서도 산부인과 수첩은 왜 남겨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의심한 정다은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온 집안을 이 잡듯이 뒤지다가 자신이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는 산부인과 수첩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산부인과의 원장을 찾아가는데 그 원장이 바로 한채진 군의 아버지이며 그에게서 정순만 한채진군의 유괴범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받게 됩니다.
바로 자기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를 했던 내용인데요,
‘아현동 고가 밑 수퍼 앞’ 같은 내용이 병원장에게는 1억을 갖다 놓으라는 장소를 알려준 쪽지가 된 것입니다.
마침 다은이 기자라고 거짓말을 하고 병원장을 만났기 때문에 병원장은 그 쪽지도 공개해 달라며 의심 없이 증거를 다은에게 건네 주고
다은은 결정적인 증거를 은폐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정순만이 보관했던 산부인과 수첩만 없었다면 이런 상황도 없었을 텐데,
왜 정순만은 다른 모든 증거를 없앴음에도 그 수첩만은 남겨두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서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정순만이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산부인과 병원장은 자신이 다은에게 건네준 쪽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다은이 정순만의 딸임을 알았음에도 말이지요. 만약 병원장에 경찰에게 자신의 용의자의 딸에게 속아서 유력한 증거인 쪽지를 건네줬다는 얘기만 했어도
이야기 전개는 달라질 수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는 병원장을 보며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관객인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가라면서 말이지요.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경찰은 정다은에게도 아버지, 그러니까 정순만이 범인이냐고 자꾸 물어 봅니다.
아니 물어 보는 수준을 넘어 범인인줄 아니까 빨리 자백해라, 아버지라고 이런 범인을 숨겨주면 어떡하냐고 물어 봅니다.
기자도 물어 보고 병원장은 아예 자백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도 웃긴 것이 정다은은 의심만 할 수 있을 뿐 정순만이 실제로 유괴를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실제 유괴 현장에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그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들은 적도 본적도 없기 때문에 진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영화를 통해 아버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의심이 점점 강해진 것뿐이지요. 그래서 다은도 아버지에게 계속 진실을 얘기해 줄 것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정다은에게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냐고, 진실을 얘기하라고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가장 큰 불만은 정다은이 너무도 쉽게 아버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정다은과 정순만은 일반 부녀지간이 아니라 조금 특수한 관계를 갖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딸 바보도 이런 딸 바보가 없을 정도로 애지중지 하면서 키워낸 아버지 정순만과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착하고 모범적으로 자란 정다은은 ‘굉장히 x 100’만큼 돈독한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진범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와 흡사하다는 점,
진범의 얘기 중에 아버지가 늘 하던 얘기랑 같은 얘기가 들어 있다는 점 때문에 아버지를 의심한다는 것이 어이없었습니다.
일반적인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아무리 비슷한 상황이라도 의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텐데
이처럼 특수한 관계인 부녀지간임에도 너무도 쉽게 ‘의심’이라는 감정이 스며드는 정다은 인물에 공감이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영화를 보고 정리하며 느낀 점은 이 영화는 ‘공범’이란 주제이자 제목을 먼저 설정해 놓고
그것에 이야기 전개와 결말을 끼워 맞추려다 보니 이처럼 다양한 억지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아버지는 범죄를 저지르고 딸은 그 범죄를 눈치챘으면서도 모른척하는 공범 만들기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상상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판타지 (Fantasy)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몇 번씩 같은 얘기를 하지만 그렇다면 사실성 (Reality)이 담보 되어야 하고, 또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즉 관객이 납득할 수 있을만한 원인, 상황전개, 인물 설정 등이 영화에 담겨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 비추어 왔을 때
이 영화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약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점은 흥행으로도 이어집니다.
이 영화의 관객수는 611개 스크린을 독점하다시피 했음에도 관객수는 1,766,285 명이었으며 수입도 12,333,110,882원이라고 합니다.
제작비가 30억 원 정도였다고 하니 꽤 많이 번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제작사와 배급사, 그리고 극장의 수익 배분 및 홍보비 등을 감안하면
손익분기정도 맞추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 되는 영화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인데요, 이 영화에서는 앞서 얘기했던 여러가지 것들이 바로 완성도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을 찾아 보니 조감독을 하던 국동석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더군요.
거기에 장르까지 스릴러였으니 조금 벅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작품이 거듭될수록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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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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