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프로야구 팀을 응원하는 후배와 술을 마시던 중 후배가 물었습니다.
“머니 볼 봤어요?”
“그게 뭐야?”
“야구 영환데 형이 보면 꽤 좋아할걸요?”
“그래? 돈지랄 하는 영환가?”
[머니 볼]이라는 제목만 듣고 엄청난 돈을 들여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그 선수들이 잘하든 못하든 어떤 특정한 역할을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니고. 아무튼 한 번 보세요.”
그렇게 난 [머니 볼]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야구 영화는 꽤 많이 존재했었습니다. 우리나라만해도 [수퍼스타 감사용], [퍼펙트 게임], [YMCA 야구단], [글러브] 등이 있었고
헐리웃 영화에서도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19번째 남자], [꿈의 구장], [더 팬] 등이 있는데요
이들 ‘대부분’ 영화의 공통점은 선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데 있습니다.
선수를 중심으로 그의 고난과 역경을 눈물 짠한 이야기로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했다는 것인데요,
그렇다 보니 그 선수에 대한 추억이나 향수 같은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대부분의 영화가 실패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장 [퍼펙트 게임]만 봐도 최동원과 선동렬의 선수 시절에 대한 기억이나 향수가 없는 사람들은 남들에 의해
‘잘 던졌던 투수’정도로만 알고 있고 그렇다 보니 굳이 그들의 얘기를 영화로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죠.
* 추신수가 유명해졌던 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찾아간 빌리 빈
그런 면에서 [머니 볼]은 선수가 아닌 단장에 초점을 맞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라는 점이 굉장히 독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수들의 플레이는 TV로 중계되고 기록으로 남겨지며 많은 팬들이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그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나 사건들은 우리가 쉽게 알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 조명을 맞추어 야구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전달 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갈등 구조는 ‘빌리 빈 (브래드 피트) 단장 vs 구단 스태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구단 스태프들은 구단 운영진 및 스카우터들과 감독을 포함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갈등을 빚는 과정은 바로 팀 리빌딩 과정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2001년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까지 하는 등 좋은 성적을 보이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이하 오클랜드)의 팀 전력이 시즌 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거포 1루수 제이슨 지암비, 1번 타자 중견수 쟈니 데이먼, 마무리투수 이슬링하우젠와 같은 주력 선수들이 거액을 받고 다른 팀으로 이적했기 때문인데요,
그런 부자구단들과는 달리 돈이 많지 않은 오클랜드로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리빌딩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 회의 때마다 뻔한 얘기만 해대는 스카우터를 비롯한 프런트들
하지만 회의 때마다 운영진과 스카우트들의 입에서 나오는 비슷한 얘기들은 단장인 빌리를 짜증나게 합니다.
돈이 없는 구단 사정 상 새로운 방식으로 ‘팀을 구성’해야 함에도 구단 임원들과 스카우트들은 ‘선수에 초점’을 맞추는 회의를 하는데요
이를 테면 누가 스윙스피드가 좋더라, 누가 덩치가 좋더라, 누구는 기회만 주면 좋아질 것이다, 심지어는 누가 잘 생겼더라와 같은 얘기들 말이죠.
양키스만큼 돈이 없는 구단이 선수 구성을 하는데 양키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회의를 하고 얘기를 하니까
원래부터 스카우트들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있던 빌리는 짜증을 내는 것이지요.
빌리가 스카우터들의 말을 불신하고 그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된 계기는 바로 자신의 선수시절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소위 말하는 ‘5 Tool 플레이어 (컨택 능력, 장타력, 빠른 발, 수비, 강한 어깨)’로 엄청난 계약금과 연봉을 받으며
프로구단 뉴욕 메츠에 입단한 빌리 빈 (브래드 피트)은 좀처럼 프로야구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실망감만을 안기고
저니맨 (여러 팀을 옮겨 다니는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명문 스탠포드 대학에서 4년 장학금을 주면서 데려가려고 했던 제안을 거절하고 입단한 프로였기 때문에
그 실망감은 더더욱 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대학을 나와서 프로에 갔다면 적응도 좀 더 쉬웠을 것이고 설사 잘 안 되더라도 스탠포드 대학 간판이 있으니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온갖 감언이설로 대학보다는 프로에 입단하라고 빌리를 꼬시는 뉴욕메츠 스카우터들
그래서 빌리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이 된 후에도 자신에게 오만 감언이설을 늘어 뜨려 프로 계약을 하게끔 만든
스카우트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그들의 말을 신뢰하지도 않으며 그런 성향은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팀 전력 구성을 위한 선수 트레이드 문제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주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그 곳에서 일하는 피터를 만나게 됩니다.
예일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피터는 야구를 보는 관점이 일반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고 그렇다 보니 선수를 보는 관점도 굉장히 달랐는데
그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야구 통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빌 제임스의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빌 제임스는 야구 선수로 뛴 적도 없었을뿐더러 구단을 운영해 본 경험도 없는 식품 공장의 경비원이고
그 때문에 그의 이론은 그냥 야구 팬의 열정 정도로만 취급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 빌 제임스
하지만 피터와 빌리는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팀을 리빌딩 하면서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했고
그 결과로 다른 팀에서 퇴물 취급을 받거나 버리지 못해서 안달 난 선수들을 모으게 됩니다.
빌리와 피터의 목표는 ‘좋은 선수가 있는 팀’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었고 그 이기는 팀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평가 된 선수들을 데려와 팀을 구성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석 스카우터는 빌리의 결정에 반발해 퇴사를 하고, 감독은 빌리가 1루수로 쓰라고 데려다 준 선수를 감독의 권한으로 쓰지 않는 등 빌리의 팀 구상에 저항을 합니다. 빌리와 피터의 열정에 암초가 생긴 것이지요. 그리고 팀의 성적은 최하위에 머물게 됩니다.
* 수석 스카우터와 싸우기도 하고 감독을 달래기도 하는 빌리
이 때 등장하는 음악이 Lenka의 ‘The Show’입니다.
이혼한 전 처 및 새 아빠와 함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딸에게 생일 선물로 기타를 사주며 한 번 불러 보라고 한 노래로 등장하는데
사실은 당시 빌리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가사 때문에 배치한 노래라는 생각인데요, 간단하게 가사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빌리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 노래를 불러주는 딸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I don`t know where to go/ can`t do it alone I`ve tried/
And I don`t know why/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I can`t figure it out/ It`s bringing me down I know/ I`ve got to let it go/ And just enjoy the show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팀 재건축을 빌어 붙였지만 자신 스스로도 과연 그것이 맞는 방법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빌리였고
또 그랬기 때문에 감독에게 더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의 전달하지 못했던 빌리의 상태를 표현한 딸의 목소리를 빌려 전달한 노래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 지고도 즐거워하는 선수들을 보고 어이없어 하는 빌리
이후 빌리는 보다 강력하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트레이드로 감독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경기에서 지고도 라커룸에서 즐거워하던 선수들에게 호통을 치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팀 분위기가 바뀌던 오클랜드는 어느덧 연승을 달리기 시작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20연승이라는
신기록을 만들어내며 또 다시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게 됩니다.
시즌 초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가고 전혀 새로운 방식에 기반한 선수 구성으로 인해 욕만 바가지로 먹던 팀이
모든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으며 신기록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오클랜드는 전년도에 이어 또 다시 디비전 시리즈에 패하게 되며 챔피언쉽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고 맙니다.
* 빌리의 팀 재건축에 실질적인 브레인을 담당했던 피터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상황이 바뀌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몇 년 전 제가 경쟁 PT에서도 쓴 말인데요, 내가 가진 자원과 처한 상황이 기존과 다르고 남들과 다르다면
거기에 맞게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략을 바꾼다는 것은 곧 보는 시각을 바꾼다는 말이며 빌리 빈은 피터와 함께 그것을 해냈습니다.
두 번째로 전략을 수립했으면 그것이 성공하게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결과로 평가 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선택해 놓거나 결정해 놓고도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실패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인데요, 그런 생각이 있으면 결정한 내용을 강력하게 전개하기가 어렵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지요.
이 영화에서도 빌리는 ‘The Show’란 노래도 대변되는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행동들을 선보이고
그의 손에 돌아온 것은 좋은 결과였습니다.
시즌 후 빌리는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12,500,000 달러라는 거액의 단장직 제안을 받지만 수 많은 고민 끝에 고사합니다.
그리고 2년 후 보스턴은 1918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밤비노의 저주를 풀게 되는데
당시 팀 전력 구성 방식이 빌리의 방식을 많이 참고한 것이었으며 그 때 보스턴에는 현재 기아 타이거즈에 있는 김병현 선수도 있었습니다.
* 보스턴 구장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빌리
영화적으로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야구 영화치고는 야구 경기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등장하더라도 촬영 장면과 실제 오클랜드가 경기했던 장면들이 상당부분 섞여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현실감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는 그 동안 야구 영화뿐 아니라 스포츠 영화들이 답습해 온 것처럼 특정 선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단장에 초점을 맞춘 조금은 독특한 소재의 야구 영화라는 특징 때문일 듯 합니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피터라는 인물도 실존 인물인지 모르겠고 빌리가 실제로 빌 제임스의 이론을 토대로 리빌딩을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빌리는 상황에 맞게 전략을 바꾸었고 그 전략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조직을 이끌어 나가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빌리와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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