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꽤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연이 있다.
그리 오래된 관계도 아니고 실제로 얼굴을 본 적도 없으며 나이를 아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성별과 하는 일 정도를 알고 있는 정도.
그렇다고 오래 전 영화 ‘접속’처럼 통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는 관계도 아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꽤나 어려운 그런 인연이다.
그 인연의 시작은 예전 포스팅 (http://blog.daum.net/leggie/17187279) 에도 남겼으니 굳이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고,
어쨌든 그 인연의 시작 뒤로 일년에 한 번 정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선물을 보냈었고
그 분 또한 이따금씩 나에게 책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보내 주곤 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 그 분에게서 새로운 책을 선물 받았다.
말레이시아에 살 때 이따금씩 맥주를 기울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두 살 위 한국인 선배가 있었다.
심성도 착하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도 않는 말 그대로 사람 좋은 그런 형이었는데, 어느 날 맥주를 마시며
그 형이 나에게 한 말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OO씨는 사소한 것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는 장점이 있어요’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존대를 해주던 그 형은 그 날 맥주를 마시며 내가 했던 어떤 말을 듣고는
(그것이 어떤 얘기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렇구나,라는 것을 그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나의 가장 본래의 모습은 나 스스로가 아닌 많은 시간을 들여 나를 관찰해준 사람으로부터 알게 된다는 어설픈 결론에 도달했다.
굳이 꼭 그래서만은 아닐 테지만, 난 사람의 감성을 툭툭 건드리는 책을 싫어했다.
어사무사한 말로 그럴 듯하게 포장된 예쁜 말과 그림을 무기로 마치 ‘너의 감정도 이것과 다를 바 없잖아’라고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들이 싫었던 것이다.
최소한 난 그들보다 더 작은 것들로부터 더 많은 생각을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
수 없이 많은 그런 책 중에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선배인 카피라이터 현재덕이 쓴 [하늘 위의 지하실]만이
어설픈 내 감정을 만져주었을 정도니까.
기본적으로 [두근두근 기분 좋아져라]라는 책은 읽기가 쉽다. 만화로 구성된 책이다 보니 술술 책장이 잘 넘어가
2~3시간이면 충분히 다 볼 수 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기도 편하다.
가끔 존재하는 아주 작은 글씨들을 제외하고는.
무엇보다 이 책은 ‘나는 당신의 감정을 알고 있어요’라고 어설프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어요’라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을 만들어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기록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이 모여서 반짝이는 삶이 된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기억과 추억은 다른 것이라고, 저장되는 공간도 다르고 되새겨 보는 원인도 다르며 되새긴 후에
느껴지는 스스로의 반응도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성장과정을 통해 바라 본 기억과 추억은 저런 식으로도
정리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물밀듯이 몰아치지만 언제 끊어질 지 모르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뜻뜨미지근 하지만 그 온도만큼 오래 가는 인연도 있는 듯 하다.
그 분과의 인연이 바로 후자가 아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그 분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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