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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

책을 고르는 것, 나만의 종교적 의식.

by Robin-Kim 201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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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서 있질 못한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기억이 닿는 한 오래 전부터 오래 서 있으면 허리가 뻐근하니 아프다.

그리고 발목.

짧게는 20분 길게는 30분 정도 있으면 허리와 발목에 통증이 온다.

날카로운 기억이 심장을 에이는 그런 아픔이 아니라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이 치오르듯 뻐근한 통증이다.

그렇다 보니 오래 걷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외국 여행을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일이다.

오늘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아니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 것처럼,

마치 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그렇게 돌아다녔다는 사실에 가끔씩 스스로도 의아해 한다.

물론 밤이면 그날 보았고 느꼈던 것들을 되새겨 볼 겨를 조차 없이 잠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지만.

 

 

* 다시는 오지 못할 것처럼 걷고 또 걸었던 뉴욕 그리고 동경.

 

새로운 것은 낯설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익숙한 서점을 택한다.

나에게 익숙한 경로, 책을 보는 순서, 무의식 중에도 움직여지는 발걸음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슬쩍 들여다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내려 놓기만 하면 되는

그런 서점을 택한다.

책을 고르는 과정은 나에겐 하나의 종교적 의식과도 같은 것이니까.

이 책은 어디있을까라며 경로 따위를 고민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필요없는 익숙한 서점.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만 가득찬 서재, 그 서재에서 종이 냄새를 마음껏 맡으며 활자의 움직임을 마음껏 음미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커다란 서재를 갖는 것.

 

 

철이 들면서 그런 서점을 갖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선

익숙한 서점으로 종종 발걸음을 향하곤 한다.

30분정도만 서 있어도 뻐근한 통증이 밀려오는 허리와 발목을 갖고서도

그 꿈 때문에, 아니 그 꿈을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곳으로 향한다.

 

그 곳은 어린 시절 나의 조그만 꿈이니까.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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