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의 어느 서커스 극장. 극장의 이름은 The Great Indian Circus.
이 곳은 인도에서 건너 온 어느 가족이 오랜 시간 동안 서커스 공연을 해 온 극장이지만 서커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자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된다.
그러자 이 극장의 주인은 은행에서 빌린 대출을 연장하고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임원을 초대해 그만을 위한 서커스를 보여주지만
그 은행 임원은 서커스에 대해 폄하하면서 대출 연장도 추가 대출도 승인해 주지 않는다.
이에 실망한 서커스 극장 주인은 자살을 하게 되고 그 모습을 지켜 본 그의 꼬마 아들 사히르는 충격에 빠지는데…
대략 이런 내용을 가진 인도 영화인 [더 그레이트 서커스]의 원제는 [Doom: 3 (이하 둠3)]입니다.
[둠 3]란 제목이 왜 [더 그레이트 서커스]란 제목으로 둔갑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제목이 [둠 3]니까 1편과 2편, 즉 [둠 1]과 [둠 2]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4년에 1편, 2006년에 2편이 개봉되어 인도 박스 오피스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던 둠 시리즈는 내용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기본 뼈대만 유지한 채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며 ‘제이’라는 의협심 가득한 경찰이 계속 출연하면서 그 연속성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2013년 무대를 시카고로 옮기고 인도의 대표적인 배우 아미르 칸이 주연을 맡아 [둠 3]가 제작되었는데요,
주 무대가 시카고다 보니 미국 영화인지 인도 영화인지 애매하지만 시리즈의 연속성이나 주연 배우 영화의 구성 (뮤지컬처럼 노래하며 춤추는 전형적인 인도 영화의 구성) 등을 볼 때 인도 영화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영화의 대립 구조는 기본적으로 ‘사히르 vs 은행가’로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자살로 몰게 한 은행가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히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서커스 기술을 총 동원하여 해당 은행의 지점들만 골라 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리즈의 연속성에서 본다면 ‘사히르 vs 제이’의 대립 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며 등장하는 제이가 인도에서 파견되어 은행가와 협조하면서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완성도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설프기 그지 없는 특수 효과 처리된 액션 장면들도 그렇고, 제이의 파트너 경찰인 알리의 어설픈 코메디도 그렇고 사히르 (아미르 칸)의 러브라인도 그렇고요.
이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은 이 영화의 주된 근간을 이루는 액션 장면들이었습니다.
인도 영화치고는 다양한 특수 효과를 사용해 그 규모 (스케일)를 상당히 키웠음에도 완성도 면에서는 고개를 젓게 만들더군요.
이 영화의 핵심 주제인 복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은행가는 대출을 해줄 권한과 함께 대출을 해주지 않을 권한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서커스에 대한 인기 하락에 따라 (추가)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요.
은행가 입장에서는 돈을 갚을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살을 했다면 그 잘못이 은행가에게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은행가에게 서커스가 더 커지고 사업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대출 연장과 추가 대출이 거부된 것인데
그것 때문에 자살의 원인이 은행가에게 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아마 지구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자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영화의 설정부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공감이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또 영화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컨텐츠 산업은 ‘공감’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물론 영화의 반전을 꾀하는 인물로 사히르의 쌍둥이 형제인 사마르 (아미르 칸. 1인 2역)를 등장시키지만 쌍둥이 형제라는 것을 빼면 특별한 반전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습니다.
반드시 꼭 그래서라고만 볼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국내 흥행은 9명이라는 초라한 관객 숫자를 동원하는데 그쳤습니다. 90명도, 900명도, 9,000명도 아닌 단 9명.
물론 영화의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스크린 수도 1개 밖에 확보하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9명이란 관객은 좀 너무하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영화를 ‘심각하게 보지 말고 그냥 여러 액션 영화 중 하나로 볼 수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기엔 주제가 복수라는 너무 심오한 것을 다루고 있고 또 액션의 완성도 자체가 떨어지며, 그 유명하다는 [둠 시리즈]의 후속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포커스]는 철저하게 오락성에 오롯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심오한 주제 따위는 상관없이 ‘소매치기’와 ‘사기’에 포커스를 맞추며 즐길 수 있는 영화로 포장한 것이지요.
거리의 소매치기 제스 (마고 로비)는 어느 날 고급 식당에서 한 남자에게 접근한 후 하룻밤을 보내자며 유혹, 그 과정에서 갑자기 남편이 들이닥쳐 죽이겠다며 엄포를 놓으며 돈을 요구하는 작전을 실행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고른 남자는 베테랑 사기꾼 니키 (윌 스미스)으로 그녀의 작전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고, 오히려 그녀에게 사기를 어떻게 치는지 가르쳐 줍니다.
이후 제스는 제대로 된 한탕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니키의 팀에 합류하여 큰 작전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에 빠진 니키와 제스는 한탕으로 거둬들인 돈으로 미식 축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한 중국인 사업가와 내기를 하게 되고 그 금액이 점점 커지며 위험해 지게 됩니다.
팀원들에게 나눠 줄 돈 전체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죠.
하지만 마지막 내기에서 간신히 승리하며 엄청난 돈을 거둬 들이는데 이 모두가 애초부터 니키가 계획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기에서 이긴 후 느닷없이 니키는 제스에게 이별을 얘기합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말이죠.
그리고 3년 후, 그들은 의외의 장소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재회합니다.
바로 F1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싶어하는 사업가의 제안한 경쟁 팀을 상대로 한 사기 제안을 니키가 받아들인 것이었고, 제스는 그 사업가의 약혼자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니키는 제스를 몰래 만나며 예전에 자기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제스를 향한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줄기차게 설명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업가의 비서로부터 감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스는 니키의 마음을 받아들였을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어디까지가 니키의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진심인 것처럼 얘기하고 행동하는데 알고 보니 ‘사기’라는 큰 그림의 조각들이었고, 반대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해 그 조각들이 서로 맞춰지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제스의 입장에서 함께 니키의 사기 혹은 거짓에 속게 되며, 나중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았을 때 ‘속았다’는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유쾌한 거짓말 정도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 벌어진 하나 하나가 각각 퍼즐이 되어 완성되어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는지 궁금해하는 호기심이 몰입도를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술이든 서커스든 소매치기든 사기건 비슷한 소재를 다룬 두 영화 [둠 3]와 [포커스]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단순히 반전을 통해 몰입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짜임새를 통해 관객과 밀당을 유도하고 또 그것을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몰입을 유도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유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또 다른 차이점이라면 [포커스]는 진지한 영화가 아닙니다. 이야기의 발단 자체도 소재도 주제도 앞서 얘기한 것처럼 철저하게 오락성에 맞춰져 있습니다.
반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둠 3]는 주제 자체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는 무거운 내용이며 영화 전체의 톤앤매너도 따라서 진지합니다.
그 진지함을 해소하기 위해 알리라는 웃긴 경찰을 배치했지만 억지스러운 코메디가 되기만 했을 뿐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포커스]의 경우 91,164 명의 관객 동원과 702,878,700 원의 수익이라는 주연 배우들의 이름 값을 놓고 보면 실패한 흥행이지만 ‘이런 영화가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둠 3]에 비해 꽤나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거짓과 진실, 소매치기와 사기, 마술과 서커스의 경계를 넘는 두 영화,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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