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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칠드런- 조금은 아쉬운 이사카 코타로

by Robin-Kim 201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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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고 책장만 차지하고 있던 책을 팔기 위해 시내의 알라딘 중고 서점에 갔다.

어린 시절 동대문 주변 청계천을 따라 죽 늘어선 중고 서점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시간이 흐르고 그 흐른 시간만큼 사람들의 소비 행태도 변하면서 중고 서점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요즘 알라딘이 꽤 괜찮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 두 권을 판매하고 온 김에 중고 책이나 사가야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책 구경을 하다 눈에 들어온 이사카 코타로의 [칠드런].

그의 이름 자체가 어느 정도 책 읽는 재미를 보증해주기에, 그리고 현재는 절판중인 책이라기에 주저 없이 구매했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인간도 한 번 무언가에 꽂히면 잘 바꾸지 않으려는 습성이 강한 듯하다.

 

철저히 개인적으로 이 책은 여태까지 읽었던 그의 책들보다는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저자의 초기 작품이어서 그런 듯 한데 전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화가 강점인 그의 특성을 놓고 봤을 때

주인공 진나이 외에는 뚜렷하게 캐릭터가 잡혀 있지 않았다는 점,

원래 단편이었던 소설을 장편으로 바꾸면서 화자가 바뀌고 이야기가 섞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자꾸 설명하려 한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총 다섯 개의 장 (Chapter)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다.

시력을 잃어 눈이 보이지 않는 나가세가 등장하는 장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가정 법원 조사관인 무토가 등장하는 장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가 화자다.

그런데 또 마지막 장에는 나가세가 ''로 표기되어 화자가 된다.

이런 부분 역시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전체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은 진나이는 '역시 이사카 코타로'라고 할 정도로 단단하게 캐릭터화 되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불화로 그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그는 소위 말하는 '무대뽀' 정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며 자기 실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캐릭터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가정재판소에 송치되어 온 소년과 면접을 할 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진나이가 큰 소리로,

"까마귀는 까맣잖아. 하얀 까마귀는 있을 수 없다고"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로,라는 말을 곁들였다는 것이다.그러나 드물긴 하지만 하얀 까마귀가 있긴 하다.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그 소년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소년은 성격이 삐딱한 구석이 있어서 컬러 도감을 들고 와 진나이 앞에 내밀었다.

"봐요, 이건 뭡니까? 하연 까마귀, 있잖아요. 함부로 단정하지 마세요. 이러니까 어른들이 싫다는 겁니다."

그때도 진나이는 기가 죽기는커녕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흰색이 아니야. 옅은 검은 색이야."

 

반면에 생각보다 사려가 깊다.

언제나 기죽어 있고 풀 죽어 있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개똥같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키라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아키라와 무토의 피 상담원이자 아키라 엄마의 불륜 상대를 함께 자신의 밴드 공연에 초대한다. 싫다는 것을 억지로.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공연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좌중을 압도하는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아키라의 아버지였던 것.

결국 그 모든 과정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사려 깊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을 진나이는 또 해내는 것이다.

 

그 외에도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나가세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유코가 앞이 안보이는 나가세에게 흰 색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다.

 

고민거리가 있어서 사는 게 넌더리가 날 때가 있잖아?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고민이 너무 하잘 것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뭐야, 이거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다행이야, 이제 됐어.

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한 거지, 하고 말이야.

바로 그런 때의 기분이 흰색이야.

 

이 부분은 마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고라이틀리가 빨간색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을 떠 올리게 한다.

“빨간색은 참담함을 뜻해요. 갑자기 두려워지는데 무엇이 두려운지조차 모르는 거요.

그런 기분이 들 때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일은 택시를 타고 티파니에 가는 거죠. 금방 마음이 평온해져요.“

 

여자의 염색체는 남자의 그것도 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있다고 하니 색에 대해서도 참 멋있게 표현한다고 생각을 하는 찰나

정작 글쓴이는 남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구절. 내가 가장 원하고 바라는 삶의 모습이 표현된다.

 

"역사에 남을 만한 특별한 일은 없지만, 내게는 바로 지금이 특별한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특별한 시간이 가능한 한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너무 달콤한 환상일까."

 

나가세의 나레이션으로 처리되는 이 마지막 구절은 굴곡이 많거나 번잡스러워서 요동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원하는 나의 소원을 잘 표현한 듯하여 꽤나 마음에 든다.

 

서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전체적인 완성도는 최근의 작품들에 비해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이사카 코타로만의 느낌이 묻어 있고

또 어느 정도 생각할 여지가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둘 만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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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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