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다 보면 몇 가지 철학적인 질문에 곧잘 봉착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청소년기부터 가장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 철학적 질문은 아무래도
‘나는 왜 사는 것일까’가 아닐까 싶다.
커다란 기계 속 하나의 부품처럼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나
딱히 살아가는 것에 어떤 의미를 찾기 어려운 무료한 때가 오면,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오는 청소년 시절에
누구나 한 번은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을 만한 질문, 바로 ‘왜 사는 걸까’.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자주 맞닥뜨리는 철학적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
특히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 그 교육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쌓여 온 가치관과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
가장 철학적인 질문이 아마 ‘목적을 위해서라면 방법은 어떤 것이든 상관 없을까’라는 것이 아닐까.
물론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
문제는 언제나 ‘법적으로’와 ‘도덕적으로’다.
물론 이런 심리적인 갈등이 나 같이 소심한 성격의 사람에게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이
어차피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일은
아예 하지도 않겠지만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나 성취욕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일을 해나가면서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심리적인 갈등이자 철학적인 질문임에는 틀림없을 듯 하다.
마치 다윈과 파블로프가 인간의 지식 확장을 위해 동물 실험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던 것처럼.
어디 외국뿐이랴.
권력을 잡기 위해서 민족 반역자들을 처단하기는커녕 권력의 중심에 등용시켰던
이승만을 비롯해서 왕이 되기 위해 형제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조선 태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론 다른 점이 있다면
다윈과 파블로프는 ‘인간의 지식 확장’이라는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서였다면
이승만과 태종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는
철저히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한반도]에서의
권용환 (문성근)과 대통령 (안성기) 중에서는 과연 누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은 목적을 위해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한 두 사람의 행동은 과연
옳다 그르다 아니면 맞다 틀리다라는 이분법으로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전 세계 5억 명이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커뮤니티
‘페이스 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 북 설립과정을 담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과연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 북을 정당한 과정을 통해 설립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판단은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맡긴다.
[Beyond a reasonable doubt]에서의 CJ 니콜라스는
풀리처 상이라는 목적을 위해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방법은 중요치 않은 것이다.
사실 두 영화가 결국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만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방식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는 이미 잘 알려진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페이스 북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 주인공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 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실 전달’에 중점을 둔 반면
[Beyond a reasonable doubt]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의 구성에
강한 흡입력을 부여함으로써 [세븐 데이즈] 못지 않은 재미를 주는 심리 스릴러 영화라는 점이다.
물론 어떤 것이 더 재미있고 어떤 것이 덜 재미있는 가는
보는 사람 개개인이 판단할 몫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과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Leggie...
'영화 읽어주는 남자:엔딩 크레딧'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려한 휴가- 역사는 진실 앞에 당당해졌다. (0) | 2012.01.31 |
---|---|
마미웨이: 스포일러 따위는 개나 줘버려! (0) | 2012.01.22 |
초 민망한 능력자들: 답이 없어, 답이. (0) | 2011.07.28 |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겉과 속이 다른 신 계급주의 (0) | 2011.07.18 |
영화속 첫사랑을 만나다-러브 어페어 (0) | 2011.05.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