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관련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쓸 때 누누이 얘기했던 것이 있다. 바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모든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기 때문에 패자는 항상 '역적'이자 '나쁜 놈'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사'에는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진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독립협회 회장이 우리가 그렇게 손가락질 하길 마다하지 않는 이완용이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물산장려 운동이 국산품 애용이라는 취지보다는 친일파들의 배만 불려준 운동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파고다 공원에서의 3·1운동 현장에 민족 대표 33인은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요정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사실은 또 어떠한가.
세종대왕 통치시절 남자의 평균 수명이 29세 일정도로 서민들의 생활은 힘들었으며, 신라는 삼국통일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의자왕은 삼천 궁녀를 둔 적이 없는 오히려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뛰어난 왕이었으며, 이승만과 박정희는 정권 유지를 위해 친일파들과 결탁하고 공산당 척결을 내세웠다는 것을 요즘 자라는 학생들은 알까. 아니, 요즘 자라는 학생들만 문제가 아니라 30~40대의 어른들은 알까.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해방 이후 이승만은 권력장악을 위해 당시 풍부한 자금을 가진 기득권 세력인 친일파와 결탁, 그들을 보호해주는 대신 장치 자금을 받게 된다. 그리고 권력 유지를 위해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공산당, 즉 '빨갱이' 척결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적들을-대표적 인물로 김구 님이 계신다-제거한다. 결국 이승만이 '승자'가 된 것이다.
(이승만의 발자취는 이 곳을 참조하기 바란다. http://blog.daum.net/leggie/17187109)
그리고 그 과장에서 자연스럽게 친일파들이 사학계도 장악하게 된다.
친일파들은 식민 사관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배층은 최대한 좋은 사람으로, 그에 반(反)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나쁘게 묘사한 것이다. 고려시대 '만적의 난'과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은 혁명이 아닌 '난(亂)'으로 표기한 것은 감히 정권에 도전했기 때문이며, 조선시대 신문고와 암행어사 제도가 사실은 서민들에게 무용지물이었음에도 과대 포장한 것은 지배층의 업적을 과하게 포장하려 함이며, 실패한 왕인 의자왕에게 삼천 궁녀를 붙여 줌으로써 깎아 내리는 것은 경상도 지방 왕국인 신라를 띄우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들 한다. 그리고 난 요즘에 와서 그것을 보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그것에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미래에 우리 나라를 이끌어 갈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쳐 주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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